[대전다문화] 나의 비밀은 어디까지 지켜져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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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다문화] 나의 비밀은 어디까지 지켜져야 할까

사실적시명예훼손죄와 통신비밀보호법

  • 승인 2022-08-30 17:25
  • 신문게재 2022-08-31 7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유태권(사진)
유태권 변호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제목의 설화가 있다. 여러 나라에 공통으로 전해 내려오는 설화인데, 삼국유사에 신라 경문왕에 대한 이야기로 전해 내려온다. 임금님 귀의 비밀을 알게 된 이발사(삼국유사에서는 모자 만드는 사람)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우물(삼국유사에서는 대나무 숲)에 소리를 지르고 나서 소문이 퍼진다는 이야기이다. 누구든 자신의 치부를 감추고 비밀로 묻어두고 싶어 하고, 사람들은 그 비밀을 알고 싶어 하며, 또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 한다는 인간 보편의 본성을 꼬집고 있는 설화이다. 감추고 싶은 본능과 알고 싶은 본능(혹은 알릴 자유) 중 무엇이 우선해야 할까.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것을 안 이발사가 다른 사람에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한다고 하면 현재 대한민국의 법으로 처벌을 할 수 있을까? 처벌할 수 있다. 실제로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고 해도 처벌할 수 있고,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가 아니라고 해도 처벌할 수 있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통해 임금님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판단된다면, 실제로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일 경우에는 사실적시명예훼손죄(형법 제307조 제1항)로,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가 아닌데 당나귀 귀라고 했을 경우에는 허위사실적시명예훼손죄(형법 제307조 제2항)로 처벌될 수 있다. 여러 사람에게 알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알린 사람이 그 사실을 퍼뜨릴 가능성이 있다면 명예훼손죄로 처벌된다. 대한민국은 사실적시명예훼손죄가 존재하는 소수의 몇 나라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내가 한 말이 사실이기 때문에 혹은 한 사람에게만 말했기 때문에 처벌되지 않으리라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임금님이 이발사가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을 막기 위해 그 이발사가 다른 사람과 하는 이야기를 몰래 녹음한다거나 전화 통화 내용을 녹음한다면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불법감청으로 처벌받게 된다. 그러면 이 상황은 어떨까. 평소 임금님의 이발사 자리를 노리던 못된 이발사의 친구가 이발사와 이야기하면서 임금님의 비밀 아는 거 없느냐고 꼬드기고, 입이 근질근질하던 차에 이발사가 임금님의 비밀을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이발사의 친구는 그 기회를 노려 이발사와의 전화 통화를 녹음했다면 처벌받을까.

많은 나라들에서 대화 당사자 간이라고 하더라도 동의없는 녹음은 법적으로 규제된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면 이발사의 친구가 이발사와 나눈 대화를 직접 녹음했다면 처벌받지 않는다. 통신비밀보호법은 대화 당사자가 녹음한 대화 내용을 처벌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에 출시되는 많은 기종의 휴대폰이 자동녹음 기능을 탑재하고 있고, 실제로 대화 당사자간 녹음은 민·형사 재판이나 수사에 중요한 증거로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자기가 나눈 대화가 자신의 동의없이 녹음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들 수 있고, 기분이 상할 수 있다. 나랑 이야기하는 누군가가 내 동의없이 이야기를 녹음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른바 속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처럼 생각될 것이다. 비밀스럽게 이야기할 권리, 그리고 그 비밀이 지켜질 것이라는 기대는 권리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인가.



최근 대화자간 녹음이라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동의가 없다면 처벌하는 내용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과거에도 이러한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되었다가 실패했던 사례가 있기 때문에, 이 개정안이 실제 입법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다시 한번 우리에게 의문을 던진다. 과연 내 비밀은 어디까지 지켜져야 할 것인가.

- 변호사 유태권 법률사무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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