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유등천 상류에서=니콘D5 카메라로 ISO 200, 조리개8, 셔터스피드 5초로 촬영. |
아픔을 보듬는 빛으로
71년 前 초심을 기억합니다
중도일보 창간 71주년,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1994년 7월 9일 토요일
중도일보가 석간으로 발행되던 시절입니다. 오전에 기사를 마감하고 주말의 자유를 만끽하려던 즈음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다"는 북한 중앙방송 보도가 터져나왔습니다. 기자들은 부리나케 신문사로 돌아와야 했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편집국을 보며 "전쟁이 나도 출근해야 한다던 선배들 말이 빈 말이 아니었구나. 기자라는 직업이 이런거구나!" 수습을 막 뗀 기자 초년병이 '언론의 사명'을 실감한 날이었습니다.
#1951년 8월 24일 금요일
중도일보 창간호가 발행된 날입니다. 6.25 전쟁의 와중에 중도일보는 마분지에 인쇄한 창간호를 선보이고, 지역민에게 정확한 전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당시 상황은 참으로 긴박했습니다. 1950년 전쟁이 터지자 이승만 대통령은 급하게 서울을 빠져나와 6월 27일 대전으로 피난하고 이튿날인 28일 대전을 임시수도로 공표했습니다. 전세가 악화되자 정부는 7월 16일 대구로 옮겨갔고 사흘 뒤인 19일~20일에는 '대전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집니다. 1951년에는 1·4후퇴로 수많은 피난민이 길 위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대통령조차 '임시수도 대전'을 떠나버린 암흑기에도 창간호를 만들고 신문을 이어간 기자들은 어떤 마음이었을지? '언론의 사명'을 새겨보게 됩니다.
#2022년 9월 1일 목요일
71주년을 맞는 중도일보의 창간기념일입니다. 기자에 대한 시선도 언론에 대한 시각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그거 신문에 나왔어." 이 한마디면 논란 끝이던 시절은 호랑이 담배피던 옛날이 되었고 '가짜 뉴스', '팩트 체크'라는 말이 곳곳에서 들립니다. '언론의 사명'과 '기자의 자존심'이라는 단어가 20세기의 박제된 유물처럼 느껴지는 요즘, '기자도 직업인'일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71년 전 마분지에 창간호를 찍어냈던 그 날, 기자들의 뜨거웠던 마음 만은 앞으로도 기억될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한줄기 불빛이 큰 힘이 됩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엄정중립, 신속정확, 지역사회 개발'의 사시를 내걸었던 중도일보, '시대를 밝히는 빛이 되기'를 소망했던 창간일 아침의 초심을 되새겨봅니다.
글=김의화·사진=이성희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