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용운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책임연구원 |
이건 우연이 아니다. 로켓 발사와 핵융합로 개발에는 많은 예산과 장기간의 연구 기간이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시 말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연구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장기간 꾸준하게 미래를 위해 투자한 나라들만 얻을 수 있는 과실이라는 뜻이다. 이는 또한 미래를 위해 투자할 정도로 현재의 국력에 여유가 있어야 뛰어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 우리나라는 그런 여유가 있는 국가일까.
쉽지 않은 문제이기는 하다. 그래서 일부는 여전히 상용화까지 시간이 필요한 핵융합에 우리의 미래를 걸어야 하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더구나 지금은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해일처럼 밀려오고 있는 상황이다. 비단 경제뿐 아니라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많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우리나라가 만약 핵융합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곱 개 나라라고는 하지만 유럽연합에 소속된 나라들을 따로 세면 35개국에 달하는데,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꼽을 수 있는 나라들은 거의 다 우주와 핵융합에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인구로 따져도 10억이 넘는 중국과 인도가 포함되어 있어서 전 세계 인구의 삼 분의 일 이상이 포함된다. 국토 면적으로 따져도 만만치 않다. 어느 면으로나 우리나라가 저 그룹 안에 속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물론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와 빈약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국민의 노력으로 선진국 반열에 진입한 입지전적인 나라다. 다른 여유로운 나라들과 과학 강국으로 가는 전략이 다를 수는 있다. 조금 더 적은 예산으로도 핵융합 연구를 선도하는 국가라는 위치를 유지할 수는 없을까. 안타깝게도 힘들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ITER 참여국이 반드시 내야 하는 분담금과 KSTAR라는 단 하나의 실험용 핵융합로를 운영할 수 있는 예산만 투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액수만 따지면 다른 기초 과학 분야와 비교해 큰 금액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보다 예산이 줄어든다면 핵융합 개발 전략을 근본적으로 수정하여 선진국이 먼저 핵융합을 개발하면 후발 주자로 따라잡는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따라잡을 수 있는 확률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와는 달리 치열해지는 특허 전쟁으로 인해 일단 선점당한 기술력을 극복하기는 점점 어려워질 게 자명하다.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선진국에게 기술료를 내며 핵융합로를 운영해야 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기술 거래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선도 그룹에 속해 있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힘들게 이룩한 선진국이라는 입지를 핵융합이 개발된 미래에는 도로 내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번 누리호 발사 성공에 관한 인터뷰를 읽어 보며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은 '설계와 제작, 시험, 발사 운용 등이 모두 자체 기술에 의해 수행됐다'라는 점이었다. 자체 기술 확보를 위해 모든 기술을 독자 개발하는 건 어렵고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서로 기술을 교류할 수 있는 선도 그룹에 속해 있는 것이 중요하다. 나중에 돈을 주고 기술을 사 오게 되는 경우는 이를 자체 기술로 만들 수 없다. ITER 참여와 독립적인 실험이 가능한 핵융합로 운영은 핵융합 실증 자체 기술 확보에 필수적이다. 비록 힘든 상황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그러한 연구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국력이 있다고 믿는다. 남용운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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