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혜 |
화장기 없는 얼굴에 운동복을 입은 여자 50명이 모였다. 푸른 잔디밭 위에서 주황색, 노란색 조끼를 나눠 입고 선 그들은 같은 팀이 된 사람들과 힘껏 구호를 외쳤다. <단비 체육대회>의 시작이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대전 청년 커뮤니티 단비가 <단비 체육대회>를 연 이유는 단순하다. '같이 놀고 싶어서.' 어느새 '논다'는 단어를 '쉰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익숙한 사회인이 되었다. 어렸을 적 친구 집 초인종을 누르고 "같이 놀자!"고 말할 때와 같은 '놀기'를 하고 싶었다. 함께 모여 긴 외로움을 뒤로하게 된 우리처럼 코로나를 거치며 고립된 여자들을 집 밖으로 꺼내어 연결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단비 체육대회>라는 놀이터를 꾸리고 초인종을 눌렀다. 하루 만에 목표했던 40명이 모여 모집 인원을 늘렸다. '같이 놀고 싶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연결과 활동에 대한 사람들의 갈증을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준비한 놀이는 이렇다. 미니 게임, 풋살, 미션 계주, 얼티미트, 물총 서바이벌. 미니 게임을 제외하곤 죄다 뛰거나 부딪히거나 뛰면서 부딪혀야 한다. 여자들끼리 체육대회 하면 뭐하냐는 질문에 종목을 말해주자 "여자들은 잘 못 뛸 텐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남자들끼리 늘 운동장을 차지하고 있으니 여자들이 뛰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았나 보다.
학창 시절 복도에서 말뚝 박기를 했고 학교 건물 뒤 공터에서 얼음 땡을 했다.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틈날 때마다 뛰어놀았지만 그곳이 복도와 건물 뒤 공터였던 이유는 하나였다. 운동장은 축구를 하는 남학생들의 몫이었기 때문에. 점심시간의 운동장은 남학생이 잘못 찬 공을 차줄 때나 잠시 디딜 수 있었고 운동장이 허락되었던 체육 시간에는 피구를 해야 했다. 선 안에서 공을 피하기 위해 몸을 움츠리고 종종걸음으로 움직이는 동안 운동장은 멀어져갔다. 고등학생이 되어 남학생 없는 운동장을 앞에 두고도 운동장 귀퉁이를 따라 회전 초밥처럼 빙글빙글 돌게 되었다. 야간 자율학습을 시작하기 전 틀어놓았던 교실 TV에 <음악 중심>이 아니라 <골 때리는 그녀들>을 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우리는 조금 더 빨리 만나게 됐을 것이다.
매주 조기축구 모임을 나가는 남자는 익숙해도 여자는 그렇지 않다. <단비 체육대회>를 통해 팀 스포츠를 하며 느낄 수 있는 유대감을 경험하고 지속적으로 연결되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 바람대로 새로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이 늘었고, 다음 풋살 모임을 기다리게 되었다. 우리는 함께 달리고 몸을 부딪치며 흘린 땀만큼 끈끈해졌다.
돌고 돌아 잔디밭 위로 왔다. 운동장 바깥을 돌던 여자들은 이제 운동장을 종횡무진 누빈다. 그어놓은 선 안에서 공으로 서로를 맞춰야 했던 여자들은 이제 같은 공을 쫓아 달린다. 여자가 배제되지 않는 운동장, 마음껏 달려도 되는 잔디밭에서 여자들은 즐겁다. /안다혜 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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