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 |
문화, 경제적으로는 융성했던 반면, 외교, 군사적으로는 서쪽으로는 서하(티베트계 당항족), 동북쪽으로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 여진족의 금나라, 몽고 등 불안 요소를 안고 있었다. 송태조 조광윤이 대화와 설득의 달인이었던 영향인지, 한, 당나라와 같이 천산(天山)을 넘나드는 서역 원정의 역사가 송에는 없다. 대신 송은 매년 수십만의 비단, 금, 은의 막대한 평화대금을 지불하는 외교를 선택한다. 상무(尙武)정신이 상실된 풍요로운 경제대국의 효율적(?)인 외교였다. 그리고 군벌보다 문관으로 운영되던 관리들의 봉급은 중국 역대 최고 수준이었던 모양이다. 당시 물가수준 등 정확한 비교는 어렵겠지만 번성했던 세계제국 당나라나 후대의 명나라보다 훨씬 높았고, 인구의 증가에 따른 관리의 수도 많아졌다. 그러나 이렇게 팽창되는 국가 재정은 세수의 증가를 모색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왕안석의 신법(新法)이 이런 상황에서의 대책이었지만, 세부담을 상류층에 부과하는 신법과 태만한 빈민은 백성이 근면해야 해결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마광의 구법(舊法)이 정책대결을 벌이게 된다. 그러나 이 정책 대결은 아쉽게도 외교상황과 국가 지도층 변화에 의해 조변석개(朝變夕改)했다. 왕안석과 사마광도 실각과 복귀를 되풀이 했다. 서두의 문인 소식도 구법파로서 좌천되어 지방으로 떠돌거나 유배되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은거중인 왕안석을 찾아가고, 왕안석의 시 <북산(北山>에서 자신의 시에 차운(次韻)한 작품을 남긴다. 비록 정치적 반대파지만, 인간적인 오마주일 것이다. 이와 같이 구법파의 대표였던 사마광도 편지로 왕안석과 소통했던 것도 음미해볼 대목이다. 물론 번복되는 국가정책에도 유능함(?)을 계속 발휘했던 채경이라는 정치인도 있었다. 채경의 정치적 신념은 역사에 어찌 남을 지는 의문이다. 후세 사가 중에는 왕안석의 신법에 부정적이거나, 당파의 정책대결이 혼란을 초래했다고 하지만, 실체는 정책 폐지와 부활이 제어되지 않는 변동요소가 더 큰 국력 약화 요인이라 보는 것이 객관적이다.
우리도 최근 대통령 선거를 비롯해 지방선거까지 치뤄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다. 이와 더불어 경제, 외교, 국방 등 여러 정책 변화도 예고 되고 있다. 필자가 주된 주제로 삼고 있는 에너지 정책의 경우도, 유가에 의해 물가 상승, 한전의 적자(세금으로?), 원자력발전 정책의 재가동(수명 종료 원전의 재가동 3일 후 정지?), 전기차 및 태양광, 풍력에너지 등 기후변화 정책과의 조율 등 여러 민감한 사안들을 안고 있다. 원전, 신재생을 포함한 국가 에너지 정책은 균형이 필수적이다. 시간적으로도 근시안적 경제성만이 아니라 장래 후세에 물려줄 기후변화대응도 포함된다. 제어되지 못하는 급격한 변동 요소 유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근일 한 정치인이 인용했다. 김 전대통령이 남기신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를 기대한다.
김성수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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