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행의 한글아리랑 출판기념회 모습 |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1992년 3월, 전남대 사범대학 졸업 후 은사의 권유로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났다.
당시 27세였던 청년은 이제 57세의 중년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지구촌 변방의 언어였던 한국어는 세계 중심의 언어로 부상하며 현지에서는 꿈의 언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가 떠났던 길을 따라 KOICA 교사들이 미지의 땅으로 파견됐고 30년 동안 그가 가르친 8000여명의 제자 가운데 상당수는 한국어 교사가 되어 한글 세계화의 토대를 닦았다.
바로 우즈베키스탄의 한글전도사로 유명한 허선행 선생의 이야기다.
허선행 선생의 이야기는 도서출판 라운더바우트가 5월 15일 출간한 '허선행의 한글아리랑'(저자 조철현)을 통해 큰 화제를 모았다.
책이 나오기까지 지난 3년동안 한국과 우즈벡을 오가며 허 선생을 인터뷰하고 그의 지인, 고향인 전남 나주의 어머니와 가족, 친구부터 주우즈베키스탄 한국대사까지 만나 꼼꼼하게 기록을 했다.
그의 이야기를 담은 허선행의 한글아리랑은 5월 15일, 제625돌 세종대왕 탄신일에 맞춰 출간돼 의미를 더 했다.
27세의 젊은 나이에 시작한 허선행의 외길은 실로 외롭고도 험난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우즈베키스탄의 한인사회가 그를 돕기 시작했고 전라남도 지방의회와 경기도의 지자체, NGO들이 그의 노력을 알아주기 시작했다.
특히 그 과정에서 전남 보성군청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타슈켄트 한글학교사랑회(회장 허호행)와 장학재단 고려인의 꿈(이사장 한영수), 전·현직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한글사랑 샘(회장 고선옥)과 같은 단체들은 지속적으로 그의 한글학교를 지원했다.
30년 대서사의 시작은 광주·전남이었다.
1991년 호남지역 인사들이 광주일보사를 중심으로 기금을 모아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3개국에 광주한글학교를 건립했다.
이들 한글학교는 모두 고려인들을 위한 모국어 교육기관으로 설립됐다.
그리고 이들 한글학교에서 고려인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칠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했다.
그때 제일 먼저 번쩍 손을 든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이 책의 주인공인 허선행 선생과 또 다른 이는 현재 광주에 있는 월곡고려인문화관 김병학 과장이다.
두 사람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현재 월곡고려인문화관에서 전시 중인 광주한글학교 개교 30주년 기획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딜로자 명예기자(우즈베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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