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혜 |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발언한 대통령 후보가 당선됐다. 임기가 시작된 날, 취임식이 열린 국회 앞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철회 구호를 외친 활동가들이 경찰과 경호원에 의해 끌려나갔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과 세계 시민 여러분'에게 띄운 취임 연설에서는 복지와 노동, 평등에 대한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서울에서 128㎞ 거리에 떨어진 도시, 38명의 시의원 중 여성 의원은 8명인 청주에서 여성 청년 7명이 시의원 출마를 선언했다. 평등과 존엄, 약자와의 연대. 대통령이 지운 단어가 이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시작은 '페미니스트 걔네'였다. 청주 경실련 성희롱 사건에서 피해자와 연대하던 이들은 지역 페미니즘 네트워크의 필요함을 느끼고 '페미니스트 걔네'를 출범했다. 충북여중 스쿨 미투 재판, 청주 페미니스트 행진, 여가부 폐지 반대 집회 등 청주 곳곳 성평등을 외치는 곳에 '걔네'가 있었다.
여성과 지역을 배제한 20대 대선을 목도한 이들은 이번에도 살던 곳에서 소리를 내는 것을 택했다. 끔찍하도록 노골적인 혐오 정치에 단 2석 외에 모두 거대 양당 의원으로 이루어진 지역 정치에 직접 뛰어든 것이다. 노동당 유진영 후보와 무소속 김영우·김현정·이성지·정송희·조영은·현슬기 후보는 지방 선거 최초의 페미니스트 연대 후보로 활동을 시작했다. '양당이 허락한 페미니즘'을 벗어난 이들은 '페미니즘이 당당한 청주'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여가부 폐지를 지역에서 대응하기 위한 성평등국 설치, 디지털 성범죄 예방과 피해 지원 조례 제정, 농민 여성의 건강 관리 체계 마련 등 발표한 공약은 삶과 터전에서 비롯됐다.
많은 응원 가운데 일부는 '가소롭다'는 시선을 보낸다고 한다. 그런 시선은 여성에게 타격이 되지 못한다. 재·보궐 선거에선 '기타 정당'에 투표한 15.1%의 여성들이, 대선에선 박지현 민주당 공동위원장을 필두로 0.7%까지 격차를 좁힌 여성들이 있다. 그리고 2022 지방 선거에선 청주 페미니스트 연대 후보, 진보당 손솔과 정의당 이나리 후보 등 여성 청년들이 정치에 직접 일어섰다. 정치가 여성을 지울수록 여성은 더욱 굵직하고 선명하게 존립하는 길을 찾는다. 40여일 동안 예비 후보로 활동해온 7인 중 김현정·유진영·현슬기 후보가 본선 후보로, 남은 4인은 '무소속 페미니스트 연대'라는 이름으로 후보 3명과 함께 지방선거를 완주할 계획이다.
기성 정치가 여성을 손에 들린 달걀 취급하는 사이 여성은 다시 껍질을 깨고 걸어 나온다. 혼자로 안 된다면 무리 지어 함께 소리를 내고 부리를 쪼며 적확한 곳에 균열을 낸다. 무리는 점점 커질 것이고 균열은 균열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도약은 제 것인 줄 아는 이득을 취하기 위해 다른 새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자들의 몫이 아닌, 껍질을 깨고 나와 함께 날갯짓하는 자들의 몫이므로. /안다혜 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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