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달이라고 불리는 4월이 지나가고 초록의 물결이 넘실대는 5월이 시작되었다. 아직도 밤낮의 기온차가 심해 호흡기질환인 감기에 걸리기 쉬워 조심해야 하는 나날의 연속이다. 지난 4월 중순 생각하지도 않았던 코로나 확진자가 되어 1주일 동안 자가 격리를 한 뒤 집밖으로 나오는 월요일 아침이다. 가을하늘처럼 하늘은 맑고 하얀 꽃잎이 눈송이처럼 예쁜 이팝나무가 바람결에 흔들리며 군무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워 보인다.
전주 일원과 진안의 마이산으로 아내와 1박 2일로 설레이는 가슴을 안고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오전 9시경에 출발하여 서대전 나들목(IC)로 진입하여 호남고속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향했다. 아내는 모처럼만에 단둘이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좋아서인지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를 않는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들녘의 모습들이 초록으로 물들어가고 있고, 모내기를 위한 물 가두기를 하는 논들이 대부분으로 농번기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자연의 모습에 놀라울 뿐이다. 우리는 이런 자연 속에서 순응해 가며 살아가야만 한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지며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차를 운전하여 전주역 근처에 있는 한옥 레일바이크를 탈 수 있는 한적한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평일이라 그런지 관광객이 별로 눈에 띄질 않는다. 2인승 탑승권을 사서 잠시 기다리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여직원이 오더니 오전 11시 20분에 출발이라고 알려준다. 소요시간이 왕복30분 정도라며 힘든 코스도 있다고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인다. 오랜만에 레일바이크를 타보는 아내와 나는 조작법을 간단히 교육받은 후 서서히 페달을 밟으며 출발했다. 반환점까지는 오르막길이 많아 조금은 힘들게 나아갔다. 선로 중간에 힘내라고 쓴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힘내 오빠 빨리 굴러', '우리의 사랑을 위하여' 등의 글자가 신선하고 재미를 더한다. 중간에 터널이 2군데나 있어서 시원함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다. 반환점에 힘들게 도착하니 '철마는 더 달리고 싶다.' 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6.25 전쟁이 끝나고 남북으로 향하던 철길이 막히면서 부서진 철마가 놓여있는 아픔을 떠올리며 반환점을 돌아 레일바이크의 페달을 밟는다. 아내는 달리는 중간 중간에 추억으로 간직하기 위해 사진을 열심히 찍어댄다. 내리막길이라 바이크의 가속에 시원한 바람이 춤을 추며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힘들었지만 전주에서의 첫 번째 유익한 레일바이크의 체험시간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 것 같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금강산도 식후경' 이라고 전주 한옥마을이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남부 전통시장으로 점심을 먹기 위해 공용 주차장으로 향했다. 평일인데도 주차장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주차하기가 힘들어 한참을 기다린 끝에 간신히 주차를 하고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코로나 영향인지 평일이라 그런지 오고가는 사람들은 별로 눈에 띄질 않는 적막감만이 맴도는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시장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보기에도 먹음직스런 눈에 띄는 동래팥죽이라고 보이는 식당으로 가니 손님들이 많아 잠시 기다렸다가 팥 칼국수와 깨죽을 주문하였다. 먹어보니 팥 칼국수보다는 깨죽이 더 맛이 있는 것 같았다. 팥 칼국수를 무심코 먹다가 너무 뜨거워 입천장을 델 뻔 했다. 숟가락으로 이리저리 저어가며 먹다보니 어느새 바닥을 드러내는 팥 칼국수 그릇이다. 식사를 하면서 토박이 분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식당이 가격이 싸고 맛이 좋아서 자주 찾아오는 곳이라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찾아간 곳은 너무나도 유명한 한옥마을 거리였다. 공영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아내와 같이 한복을 대여해주는 곳이 많은 거리부터 한낮의 뜨거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한복을 대여해 입지 않고 자연스럽게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한옥마을 거리를 이곳저곳을 두루 다니며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젊은 부부나 연인들이 한복을 입고 다니며 포즈를 취하며 사진 찍는 모습도 부러워 보였다. 다니면서 보니 한옥마을의 대부분은 숙박을 위한 시설이 대부분으로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눈에 띄는 가옥이 있어 가까이 가보니 흥선대원군의 증손자이자 고종황제의 손자인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손인 '이석'이 거주하는 '승광재'라는 집이라 한다. 대문은 굳게 잠겨있어 담 밖에서 나마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거리를 다녀 보니 한복을 입은 남녀 여러 명이 국궁 체험장에서 활을 쏘며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이 이채로워 보인다. 한낮이라 너무 무더워 더 이상 한옥마을 거리를 거닌다는 것이 무리일 것 같아 다른 장소를 찾아 가기로 했다.
여행을 위해 며칠 전에 전주가 가면 꼭 봐야할 곳으로 메모한 장소 중에 한 곳이 생각나 찾아간 곳이 한옥마을 공용주차장 근처에 있는 '전주 난장'이었다. 골목길 입구에 있는 곳으로 입장료가 7,500원이라고 한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우리 서민들이 살았던 삶의 모습들이 재현되어 있었다. 아내는 처음에는 왜 이런 곳에 돈을 내고 들어 가나며 언짢은 기색을 보였다. 막상 안으로 들어가니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 난로에 도시락을 얹어놓고 공부하던 모습을 보니 어릴적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내도 처음과는 달리 어린 시절 모습에 추억을 떠올리며 잘 왔다고 나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화살표 방향으로 알려주는 곳곳마다 추억의 장소요, 옛날의 추억을 되살아나게 하는 모습이었다. 가마니를 짜는 모습과 옛날 문방구 점, 생전의 어머님이 하시던 다듬이 방망이, 그리고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옛 시절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볼 수 있도록 재현해 놓아 보는 내내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개구쟁이 손자와 함께 다시 찾아오고 싶은 그런 의미 있는 장소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두레박으로 샘물을 퍼 올릴 수 있는 우물에서 포즈를 잡으며 어린 시절 물을 긷기 위해 무서운 줄도 모르고 도르래 줄을 당기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추억의 장면들을 보고나니 출구에는 무료로 추억의 아이스케크와 팝콘을 무료로 나누어 준다. 아이스케키를 먹으며 한낮의 무더위를 달래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추억 여행으로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작은아들이 예약해 놓은 숙소인 '더 메이 호텔'로 찾아갔다. 한옥마을에서 약 7.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외부와는 단절된 것 같은 외딴 곳이었다. 호텔 주차장은 코로나 영향 때문인지 주차된 차량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1층 로비로 가 방 배정을 받아 3층에 있는 호실로 들어가 가져온 짐을 한 곳에 놓아두고 방안과 욕실을 살펴보니 무언가가 부족한 점이 많은 호텔의 객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건축한 지 3년째라 시설은 깔끔했지만, 부대시설인 편의점은 없어 외부로 나가야만 해결할 수가 있다고 한다.
슬리퍼도 없고, 머리를 말리는 드라이기도 비치되어 있지 않아, 말이 호텔이지 불편한 점이 많은 곳인 것 같다. 숙소에서 잠시 머무르며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식사를 위해 아내와 같이 무작정 길을 나섰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았지만, 알 수가 없어 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전북대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가다보니 커다란 숯불갈비 간판이 보인다. 주차장도 넓고 음식이 맛있을 것 같아 식당으로 들어가니 맛 집을 제대로 찾아온 것 같다. 주문한 돼지갈비가 초벌구이해서 나왔는데, 먹음직스러워 군침이 돈다. 은은하게 구운 돼지갈비가 식욕을 돋게 해 성찬의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다. 숙소인 호텔로 돌아오니 사람들이 별로 없는 쓸쓸함만이 감돌고 있었다.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후유증인지 잔기침을 자주 하니, 곁에 있던 아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일 병원에 가보라며 따뜻한 물을 건넨다.
다음 날인 5월 3일(화요일) 컵라면과 집에서 가져온 찐 고구마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한 후,
서둘러 호텔을 나와 말의 귀를 닮았다고 하는 마이산을 향해 출발했다. 그곳까지는 약1시간 정도 소요되는 곳으로 부처님 오신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 중에 한 곳이기도 하다.
고속도로로 가다가 마이산 휴게소에 들러 살펴보니 마이산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고 하여 약간 비탈진 곳을 오르니 '마이정(馬耳亭)'이라는 정자가 눈에 띈다. 그곳으로 올라가 보니 우뚝 솟은 마이산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마이산 입구에 도착하니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방문객들이 별로 없다. 마이산 탑사로 이어지는 길은 숲속에 난 길이라 그런지 공기가 맑고 깨끗한 물이 개울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탑사로 향할수록 마이산의 위용은 더욱더 크고 아름다워 보인다. 해발 686m의 암 마이봉과 해발667m의 숫 마이봉으로 이루어진 마이산은 산 밑에 돌탑을 처음으로 쌓은 도사 이갑룡의 사적비에 눈길이 가고, 지금은 사진으로 만 볼 수 있는 겨울철이면 중력을 거스르는 신비한 자연현상인 역 고드름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쌓여진 탑들의 다양한 모습을 눈에 담으며 새로 난 데크길을 걸어 나오며 1박 2일간의 아내와의 여행을 마무리 한다. '여행은 길 위의 독서라고 한다.' 살아 숨 쉬는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고 마음속 깊이 새겨 담을 수 있어 좋다. 또한, 사랑하는 아내와 정년퇴직 후 자주 함께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이번 봄 여행은 더욱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초록을 머금은 숲속의 나무들과 가로수의 이팝나무들이 봄바람이라는 지휘자에 의해 즐겁게 춤을 추며 봄 여행을 하는 우리 부부를 축하해주고 있었다.
덕천 염재균 / 수필가
염재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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