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이런 꿀 받아 본 적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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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이런 꿀 받아 본 적 있나요!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 승인 2022-04-15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택배요!" 하는 소리에 문을 열었다.

배달된 것은 작은 박스였다. 발신인 김용운이란 이름과 폰 번호가 박스 표지에 씌어 있었다. 80년대 초반 충고에서 3학년 때 담임한 제자로 기억이 됐다. 졸업 후 연락이 없던 제자가 수십 년 만에 뜻밖의 선물을 보내온 것이다. 택배를 받고 보니 만감이 교차하는 얼떨떨 그 자체였다. 마침 보관된 졸업 앨범이 있어 사진을 찾아 제자 얼굴을 확인해 보았다. 사진을 보니 당시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머릿속에 되살아났다.

박스를 풀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것은 귀한 꿀 한 병이었다. 택배 운반 중에 꿀 병이 손상될까봐 포장용 비닐 겹겹으로 싸매고 묵고 신중을 기했다. 제자의 정성과 사랑이 묻어나올 듯한 포장이었다. 포장을 풀며 과거 몇 십 년 전 회상으로 돌아갔다.

학생 때의 제자는 가슴이 따뜻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공부는 좀 시원치 않았지만 온유한 성격에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착한 학생이었다. 도시락 가져오지 못하는 친구를 위해 자기 도시락 나눠 먹는 동정심이 많고 포용력 있는 학생이었다. 그는 또 친화력 있어 잘 어울리고 참된 용기와 공명심도 있어 동료들이 좋아하는 친구였다.



전화를 걸어 정성과 사랑을 잘 받았다는 사례인사를 했다. 고맙고 감사하다는 얘기 끝에 근황을 물어보았다. 제자는 부친께서 몇 년 전에 돌아가셨고 부친이 하시던 양봉업을 물려받았다고 했다.

제자가 강원도로 벌통을 옮기는 중인데 내 생각이 나서 꿀 한 병을 보냈다고 했다.

순간 나는 목이 멘 목소리에 눈물까지 핑 돌았다. 똘이장군으로 통했던 80년대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교직생활 마치고 많은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것으로 차별하지 않고 지도했기에 그런 점에선 자부심이 똬리를 틀었다. 꿀 보내온 제자도 아마 그런 면에서 나를 지금껏 기억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공자의 말씀이 떠올랐다.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그 중에는 반드시 내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세 사람 가운데에는 나보다 앞서는 현자도 있을 수 있고, 나보다 우둔한 자도 있을 수 있다. 현자는 내가 당연히 배워야 할 사람으로 내 스승이 될 수 있다. 또 우둔한 자는 어리석음으로 깨달음을 주기 때문에 그 또한 내 스승 될 자격으로 족한 것이다.

나는 평생 교사로 인간 정원사 노릇을 했지만 내가 못한 것을 제자는 해내고 있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승이 못한 것을 해내는 제자가 바로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생각이 들었다.

순간 나는 제자로 인해서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나는 내 아닌 타인이 나로 인해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살아 본 적이 있었는가!

나도 제자처럼 사람냄새 풍기는 삶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을 줘 본 적이 있었는가!

나는 오늘 제자가 보내온 꿀 한 병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고 깨닫게 되었다. 그 가운데 행복이란 것도 조금은 깨달은 것 같았다. 깨달음이 있었기에 오늘은 지불 없는 소득으로 마냥 흐뭇한 시간이었다.

사람이 행복감을 느끼는 감정은 별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많고 권세가 있는 사람이라서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 날이었다.

나를 생각하는 마음에 안부라도 물어오고, 카톡이라도 보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또한 행복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가 나와 더불어 차 한 잔이라도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그 누군가 있다면 그 역시 인생을 잘 산 것이란 생각이 되었다.

값비싼 음식은 아니라도 함께 식사 한 끼라도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면 그 자체가 행복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얼굴을 보지 못하는 원거리에서도 누군가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부러운 인생을 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세월 속에서도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그 또한 행복을 달고 사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과연 내 현주소는 어디쯤 될 것인지 가슴에 오는 느낌만으로도 가늠해봐야겠다.

나는 퇴임 후에 후회로 얼룩진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고3 담임으로 입시지도를 한답시고 나는 학생들 좋은 대학 보낸다는 명분하에 학생들을 점수 따는 기계 만드는 교육에 주력했다. 소위 명문대 일류대를 보내기 위한 교육을 하는데 골몰한 학생지도로 교직을 마감했다. 여느 선생님이나 다를 것이 없는 교직생활이 된 것 같아 많이 후회하고 있다.

점수 많이 맞아 좋은 대학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사람냄새 물씬 풍기며 사람다운 사람으로 답게 사는 것에 치중한 교육을 제대로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김용운 제자를 비롯하여 사람 냄새로, 또 다른 인간 향 내음을 풍기며 살아가는 주변의 몇몇 제자들에게 찬사와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내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을 실천하는 제자!

그로 인해 깨닫고 터득한 즐거움에 나는 마냥 가슴이 들떠 있다. 공자 말씀대로, 이런 깨달음을 준 제자는 스승으로 삼을 만도 하다는 표현이 잘못된 것도 아니잖은가!

이런 꿀 받아 본 적 있나요!

청출어람(靑出於藍)이 새삼스런 느낌으로 다가오는 꿀 한 병!

이 꿀에는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보은과 감사의 마음이 숨을 쉬고 있었다.

여기에는 지명(知命)의 나이가 돼서도 사제지간의 인연을 챙기는 어떤 보석보다도 소중한 마음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보석은 갈아야 빛이 난다지만 이 꿀 속에는 갈지 않아도 번쩍번쩍 빛나는 아름다운 마음이 숨 쉬고 있었다.

보석보다 귀하고 소중한 정성과 사랑, 축나는 거 아까워서 이걸 어떻게 먹을 수 있겠나!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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