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월화수목 대전달빛걷기 대회 기간 중 참가자들이 갑천을 걷고 있다. (사진=이성희 기자) |
등번호를 붙인 대전달빛걷기대회 참가자들은 삼삼오오 출발하기를 기다려 조금 늦게 출발선에 섰다. 바쁘게 오가는 도로 위 풍경과 다르게 갑천변은 여유 있었고 예상외로 조용하기까지 했다. 내 발걸음 소리가 양 발에서 조금 다르게 나는 것 같아 걷는 자세를 교정해보았고, 앞서 가는 사람들의 대화도 의도치 않게 듣게 되는데 같은 도시에서 사는 이웃들에게 즐겁고 슬픈 일은 무엇인지 조금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갑천을 굽어보는 대전KBS에 약간의 야간조명을 설치해도 시민들에게 더 많은 영감을 줄텐데하는 아쉬움을 안고 대덕대교를 통과하자 예상 외로 깊은 산속에 들어온 느낌이 전해졌다. 갑천 양쪽 도로가에 식재된 오랜 수령의 가로수가 도심 조명을 가리고 소음을 막아주면서 좀처럼 느끼지 못한 적막감을 선사해줬다. 같은 시간대 천변은 축구공으로 드리블을 연습하는 시민과 야구공을 주거니받거니 캐치볼하는 아버지와 딸 그리고 섹소폰을 연습하는 중년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조금 늦게 출발해 앞서 걸어가는 이들을 쫓아가며 대전달빛걷기대회에 참가 중인 이들에게 대화를 건냈다. 가장 먼저 만난 참가자는 20대 연인 팀인데 여자친구가 이번 걷기대회 광고를 보고 재미 있을 것 같아 남자친구와 참가하게됐다고 한다. 대화 중에 놀란 것은 이들 커플은 대전에 거주하면서 이날 갑천을 처음 걸어본다는 것이고, '힐링'이라는 단어를 연발했기 때문이다. 20대 연인이 힐링이라는 단어를 꺼낼만큼 저 제방 너머 육상의 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발걸음을 재촉해 두 번째로 대화를 건넨 팀은 중학생 딸을 동반한 가족이었는데 달빛걷기대회에 여러 번 참여한 경력자였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기 전 수많은 사람이 운집한 걷기대회에 참여한 경험이 있던 이들 가족은 오히려 오늘처럼 소규모로 움직이는 게 더 운치있고 만족감이 든다고 설명했다. 중학생 딸이 손가락으로 가르켜서야 걷는 와중에 해가 졌고, 붉은 달이 떴다는 것을 알았는데 완전한 보름달이었다. 한번 더 발걸음을 빨리해 앞서가는 또다른 가족을 만났다. 할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손녀까지 3대가 모인 일행이었는데 아버지 생신을 맞아 가족 10명이 모였고 걷기대회를 마치고 생신축하 저녁식사를 할 계획이라고 했다. 아버지 생신을 축하하려 손자손녀까지 총출동한 가족 모임에서 7㎞ 걷기를 실천한다는 게 남다르게 여겨져 한참을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70세를 넘긴 아버지와 어머니가 걷기를 즐겨하셔 가족 모임 장소로 대전달빛걷기대회를 선택했다고 한다. 걸음이 빠른 어머니는 소년를 데리고 먼저 걸어나갔고, 할아버지는 아들내외와 걸음을 맞추며 쉴새 없는 대화가 오갔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걷기앱을 확인해보니 지금까지 걸어온 거리가 5㎞를 넘어 이번 대회에 종반을 향하고 있음을 알았고, 그동안 평균속도 5.2㎞/h, 최고 9㎞/h 걸었노라고 단말기가 안내해주었다. 한국과학기술대학교(KAIST) 앞을 지나면서 눈앞에는 대덕대교와 엑스포다리 그리고 신세계백화점의 야경이 펼쳐졌다. 그 너머로 걷기대회 출발할 때 뜨거운 공기를 주입하던 열기구가 완전히 펼쳐져 엔진을 켤때마다 전구모양의 기구는 깜박깜박 빛을 발했다. 참가자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휴대폰에 사진을 담았다. 대덕대교와 38층 신세계백화점의 야간조명을 배경 삼아 늠름하게 서서 카메라를 바라보는 참가자가 있고, 가족 단위로 찍을 수 있도록 옆을 지나던 참가자가 카메라를 대신 들어주기도 했다. 대전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소 앞에서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감탄사를 내었고, 대화의 내용은 건강과 희망으로 모이는 듯 했다. 엑스포다리에 올라서자 등번호를 부착한 걷기대회 참가자들은 대전야경을 즐기러 나온 관광객들과 뒤섞였는데 가을 보름달이 최신의 도시를 비추어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한 장면을 연출했다. 코로나19를 극복하고 더 많은 시민들이 걷기대회를 통해 변화하는 대전을 만끽하는 다음 대회를 기약하며 제10회 월화수목 달빛걷기대회를 마쳤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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