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융복합양자과학연구소장 |
광활한 우주는 많은 이에게 호기심의 대상이며 상상력을 자아내는 원천이다. 필자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보며 과학자로서의 꿈을 키워나갔기에, 우주 개발이나 천문학에 관한 기사나 강연을 곧잘 찾아보곤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미국의 천문학자 필 플레이트 박사가 아포피스 소행성에 관하여 말했던 강연이다. 당시 아포피스는 지구에 떨어져 커다란 재난을 일으킬 확률이 있다고 해 관심을 끌었다. 추후 관찰한 결과 다행히 앞으로 100년간은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아포피스보다 이온 드라이브 또는 이온 추진이라는 인공위성의 추진 방법이었다. 1960년대의 공상과학 TV 드라마 스타트렉에는 23세기를 배경으로 빛보다 빠른 속도로 우주를 여행하는 우주선 엔터프라이즈호가 등장한다. 그런 엔터프라이즈의 승무원이 '고도로 발달한 기술'이라고 묘사했던 이온 드라이브 기술을 21세기의 인류는 이미 보유하고 있다고 너스레를 떠는 플레이트 박사에게 빵 터졌던 기억이 있다.
종래의 로켓 엔진은 화학적인 반응에서 일어나는 에너지를 추진력으로 사용한다. 단번에 많은 힘을 내기엔 좋은 방법이지만, 효율이 그렇게 높지는 않다. 이와는 달리 이온 추진은 원자를 이온으로 만들고 이를 전기장으로 가속해 우주 공간에 쏘아 준다. 이는 물리학 연구에 많이 사용하는 가속기나 핵융합 장치에서 발전한 기술이다. 화학 반응을 이용하는 엔진을 사용할 때보다 훨씬 고속으로 이온을 뿜어낼 수 있으므로 연비가 아주 높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온 엔진은 선진국에서 경쟁적으로 개발했지만 최초로 실용화한 나라는 일본인데, 일본이 입자 가속기의 대국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놀랍지 않다. 이온 엔진을 탑재한 소행성 탐사선 하야부사가 소행성의 표면에서 시료를 채취해 지구로 돌아오는 데 성공한 것은 일본이 자랑스러워하는 유명한 이야기가 됐다.
디스플레이 산업에 사용하는 이온 주입기라는 장비도 같은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의 디스플레이 산업이 세계 최강이라고는 하지만 이온 주입기만큼은 일본의 닛신 이온 기기라는 회사에서 전량 공급받는다고 한다. 정부와 산업계에서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를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오랜 세월 가속기나 핵융합과 같은 대형연구시설에 투자하며 축적한 일본의 기술력을 단시간에 따라잡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이온 엔진과 이온 주입기의 예를 보면서 고도로 발전한 우주 기술이나 산업기술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낀다. 지금 당장은 국가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기 어렵지만 기초과학과 기초과학 진흥을 위한 대형연구시설에 대한 투자가 왜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먹고사는 것이 힘들었던 지난 세기의 대한민국에서는 우주에까지 많은 관심을 두기 어려웠다. 이제는 그간 융성해진 국력을 바탕으로 기초과학 진흥에도 힘을 쓰고 우주 탐사 프로그램도 착착 진행해 모두가 자랑스러워할 성과를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침 우리나라도 앞으로 소행성을 탐사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것도 바로 앞서 이야기한 아포피스라고 하니 필자도 멀리서 응원하며 지켜볼 계획이다. 박승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융복합양자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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