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진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대전지원장 |
교육 수준, 평균 수입, 고용률이 높고 녹지 공간이 충분한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건강한 생활습관과 건강정보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소득분위와 거주지역에 따라 국민 평균 기대수명이 6.5세까지 차이가 난다(통계청, 2019). 지역 간 의료균형이 중요한 이유이다.
우리나라 수도권 인구는 1994년부터 이미 2000만 명을 돌파했고 대형병원들은 수도권에 몰려있다. 고속철을 타고 상경하는 지방 거주 환자는 연 802만 명에 이른다. 2019년 '빅5'라 불리는 서울 대형병원의 연 매출 5조 원 중 66%를 지방 환자가 지불했다. 수개월 대기, 3분 진료도 마다 않고 수도권 대형병원 '환자 쏠림'은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심각한 문제다.
5년 전 강원도 태백시에 공공 분만병원을 개원했다. 한 해 동안 태백에서 출생 신고한 186명의 신생아 중 단 17명만이 태백에서 태어났다. 정부가 의료환경이 열악한 다른 지역에 세운 13개 분만병원도 사정은 비슷하다. 수도권 대형병원들은 공룡처럼 커지고, 피부·성형외과가 밀집한 강남 3구의 모습이 오늘날 한국 의료의 현실이다.
OECD 회원국 대부분은 1·2·3차 의료전달체계가 잘 정립돼 있다. 1차 의료는 주치의제도가 관행 또는 의무화되어 있고, 2·3차 진료가 끝나면 주치의에게 회송된다. 우리나라도 수도권 대형병원과 지방 병·의원 간 협력진료를 활성화하기 위해 2016년부터 '진료의뢰·회송 시범사업'을 시행 중이다. 이후 의료이용을 분석한 결과(2019년), 10명 중 4명은 다시 대형병원을 찾았다.
'불편한 현실'은 또 있다. 전국 7만여 곳 의료기관 중 공공병원 수는 단 5.5%, 병상 수로는 9.6%에 불과하다. OECD 회원국들의 공공병원 병상 점유율(51.8%, 2019) 비교 5분의 1 수준에 머무른다. 전국 70개 진료권 중 27곳은 공공병원이 아예 없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유일 건강보험제도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공공재원으로 전 국민 의료보장을 실현했지만, 정작 공공병원 수는 최저라는 모순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의료취약 진료권에 400병상 규모의 공공병원 확충과 공공의대 신설, 지역의사 확대 등 공공의료 강화 대책이 발표되었지만(2020.12), 의사단체 반발로 제자리걸음이다. 의료와 관련한 국가적 사명은 공공성 높은 국가 의료제도를 갖추는 것이다. 건강수준, 적정부담, 의료형평성, 의료 질과 효율성이 보장되는 제도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방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 사회변화를 반영하고, 응급·외상·분만과 같은 필수의료가 보장되도록 지역 공공의료가 확충돼야 한다. 민간병원과는 경쟁이 아닌 협력 관계로 역할을 분담하고 별도 지원책도 필요하다.
미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는 코로나19를 맞았다. 쉴 새 없이 달려온 감염병 전담병원의 의료진들도 지쳐있다. 이번 위기는 우리나라 보건의료시스템의 한계와 지역의료,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계기가 됐다. 의료 질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으로 수도권 대형병원을 선호하지만 우리 지역에도 질 평가결과 우수등급을 받은 의료기관이 많다. 신속한 진단과 편리한 의료이용이 최고의 선택이다.
올 추석 명절, 따뜻한 기사 하나를 접했다. 대학병원장 출신 의사들이 은퇴 전·후 의료취약지에 내려가 의료공백을 메우고 있다. 경남 함양, 강원 인제 등 농촌 보건소가 그곳이다. 심평원에 근무한 심사위원장(전 삼성의료원장)도 창원에서 지역의료 봉사를 하고 있다. 경험 많은 시니어 의사들의 손길이 취약지 의료공백에 힘을 보태니 감사한 일이다. /공진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대전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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