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 모자라거나 넘치거나 막히거나

  • 오피니언
  • 사이언스칼럼

[사이언스칼럼] 모자라거나 넘치거나 막히거나

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정책부 한의정책팀장

  • 승인 2021-08-26 10:12
  • 신문게재 2021-08-27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학정책연구센터장
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정책부 한의정책팀장
어제부터 허리가 아프다. 사실 명확하게 보자면 허리가 아프다기보다는 다리가 아픈 것이지만 나의 알량한 지식이 이것은 다리의 문제가 아니라 허리의 문제라고 판단한다. 아! 또 허리에서 뭐가 막혀서 다리가 아픈 걸까. 아는 것이 병이라고 어딘가 안 좋으면 관련된 모든 병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편다. 단순 염좌부터 추간판 탈출증, 장간막암까지 상상과 걱정의 나래를 편 뒤에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이렇게 허리가 아팠던 예전 기억이 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 그 통증과 느낌이 지금과 똑같다는 걸 깨닫는 순간 안심한다. 이 아픔도 그때처럼 사라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모든 통증은 통(通)하면 해결될지니…

너무 단순화시키는 감은 있으나 특별한 외상이거나 외부에 의한 감염이 아닌 이상 질병은 결국 세 가지에서 비롯된다. 모자라거나 넘치거나 막히거나… 사람의 몸에는 많은 길이 있다. 혈액이 지나가는 길, 신경이 지나가는 길, 호르몬이 지나가는 길 등. 그 길은 자원과 신호가 전달되는 경로이다. 바깥세상에 있는 길을 통해 말이 돌고 돈이 돌고 물자가 돌 듯이, 몸 안의 길도 기능적으로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인체 바깥에서 조달한 자원을 인체 내부로 효율적으로 전달하고, 인체에서 내보내야 할 자원은 외부로 방출한다. 그리고 인체 내부의 여러 조직과 기관이 그 경로를 통해 대화하고 소통하며, 인체 전반의 적절한 기능을 유지한다. 이런 길로 유통돼야 할 물자가 모자라거나 넘치거나 막히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혈액이 모자라게 되면 빈혈이 생기고 넘치게 되면 출혈이 생기고 막히게 되면 경색이 생기게 된다.

현대인의 질병은 그 세 가지 중에서도 특히 막히는 데서 비롯된다. 과거와 달리 현대인들은 모자라는 것으로 고통받는 일은 드물다. 하물며 건강기능식품과 영양제를 먹는 이유도 영양의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서이지 절대적인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리고 넘치는 것으로 문제가 되는 것도 막히는 것에 비하면 드물다. 뇌졸중 환자의 76%는 혈관이 막히는 뇌경색이고 24% 환자만이 뇌출혈이다. 대부분은 막혀서 생기는 문제다. 세상 이치가 비슷한 것이, 집에서도 싱크대든 화장실이든 배관이 터지는 경우보다는 막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불통즉통(不通則痛), 통즉불통(通則不痛)'이라 해 막히는 것을 매우 경계했다. 통하지 않으면 아프고, 통하면 아프지 않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한의학에서는 많은 질환의 병리학적인 기전으로 불통(不通)을 이야기한다. 진액(津液)이 막히면 담(痰)이 되고, 혈액(血液)이 막히면 어혈(瘀血)이 되고, 기(氣)가 막히면 기울증(氣鬱症)이 된다. 담음과 어혈, 기울(氣鬱)은 한의학에서 중요한 병리 기전들이자 통증의 원인이다. 신체의 통증과 마음의 통증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이렇게 중요한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객관적으로 규명하기는 쉽지 않다. 담과 어혈, 그리고 기울증이 무엇인지 그리고 병의 경중을 무엇으로 판단할 것인지, 객관적인 진단지표가 현재까지는 부족하다. 보여야만 믿을 수 있는 시대에 예전처럼 환자를 관념과 개념으로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최근에는 이러한 상태와 기전을 과학화, 객관화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자, 어쨌거나 일단 막힌 것을 알았다면, 서로 간에 소통을 시켜줘야 한다. 빡빡해서 막힌 것은 성글게 해 주고 좁아서 막힌 것은 넓혀 줘야 한다. 나의 허리는 신경을 통해 다리와 의사소통하기를 원하고 있다. 나는 허리 길을 넓히기 위해 며칠간 스트레칭을 할 것이다. 그것은 나의 허리와 다리가 교감하게 해 주고, 이를 통해 불통으로 인한 통증은 사라지리라 믿는다. 이제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날씨가 차가워지면, 모든 것은 수축한다. 내 몸 안의 길들도 좁아지기 마련이다. 어딘가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우울하다면 우선 몸과 마음에 힘을 빼고 나의 몸과 몸이, 몸과 마음이 소통할 수 있도록 스트레칭과 명상을 통해 길을 넓혀 보자. 다들 화통(和通)하게 아픈 데 없이 삽시다. 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정책부 한의정책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2. [현장취재]한남대 재경동문회 송년의밤
  3. 대전시주민자치회와 제천시 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 자매결연 업무협약식
  4.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대전.충남 통합으로 세계 도약을"
  5.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1. 천안시의회 김영한 의원, '천안시 국가유공자 등 우선주차구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 상임위 통과
  2. 한화이글스, 라이언 와이스 재계약 체결
  3.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4.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5. 더젠병원, 한빛고 야구부에 100만 원 장학금 전달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