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정책부 한의정책팀장 |
너무 단순화시키는 감은 있으나 특별한 외상이거나 외부에 의한 감염이 아닌 이상 질병은 결국 세 가지에서 비롯된다. 모자라거나 넘치거나 막히거나… 사람의 몸에는 많은 길이 있다. 혈액이 지나가는 길, 신경이 지나가는 길, 호르몬이 지나가는 길 등. 그 길은 자원과 신호가 전달되는 경로이다. 바깥세상에 있는 길을 통해 말이 돌고 돈이 돌고 물자가 돌 듯이, 몸 안의 길도 기능적으로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인체 바깥에서 조달한 자원을 인체 내부로 효율적으로 전달하고, 인체에서 내보내야 할 자원은 외부로 방출한다. 그리고 인체 내부의 여러 조직과 기관이 그 경로를 통해 대화하고 소통하며, 인체 전반의 적절한 기능을 유지한다. 이런 길로 유통돼야 할 물자가 모자라거나 넘치거나 막히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혈액이 모자라게 되면 빈혈이 생기고 넘치게 되면 출혈이 생기고 막히게 되면 경색이 생기게 된다.
현대인의 질병은 그 세 가지 중에서도 특히 막히는 데서 비롯된다. 과거와 달리 현대인들은 모자라는 것으로 고통받는 일은 드물다. 하물며 건강기능식품과 영양제를 먹는 이유도 영양의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서이지 절대적인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리고 넘치는 것으로 문제가 되는 것도 막히는 것에 비하면 드물다. 뇌졸중 환자의 76%는 혈관이 막히는 뇌경색이고 24% 환자만이 뇌출혈이다. 대부분은 막혀서 생기는 문제다. 세상 이치가 비슷한 것이, 집에서도 싱크대든 화장실이든 배관이 터지는 경우보다는 막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불통즉통(不通則痛), 통즉불통(通則不痛)'이라 해 막히는 것을 매우 경계했다. 통하지 않으면 아프고, 통하면 아프지 않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한의학에서는 많은 질환의 병리학적인 기전으로 불통(不通)을 이야기한다. 진액(津液)이 막히면 담(痰)이 되고, 혈액(血液)이 막히면 어혈(瘀血)이 되고, 기(氣)가 막히면 기울증(氣鬱症)이 된다. 담음과 어혈, 기울(氣鬱)은 한의학에서 중요한 병리 기전들이자 통증의 원인이다. 신체의 통증과 마음의 통증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이렇게 중요한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객관적으로 규명하기는 쉽지 않다. 담과 어혈, 그리고 기울증이 무엇인지 그리고 병의 경중을 무엇으로 판단할 것인지, 객관적인 진단지표가 현재까지는 부족하다. 보여야만 믿을 수 있는 시대에 예전처럼 환자를 관념과 개념으로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최근에는 이러한 상태와 기전을 과학화, 객관화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자, 어쨌거나 일단 막힌 것을 알았다면, 서로 간에 소통을 시켜줘야 한다. 빡빡해서 막힌 것은 성글게 해 주고 좁아서 막힌 것은 넓혀 줘야 한다. 나의 허리는 신경을 통해 다리와 의사소통하기를 원하고 있다. 나는 허리 길을 넓히기 위해 며칠간 스트레칭을 할 것이다. 그것은 나의 허리와 다리가 교감하게 해 주고, 이를 통해 불통으로 인한 통증은 사라지리라 믿는다. 이제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날씨가 차가워지면, 모든 것은 수축한다. 내 몸 안의 길들도 좁아지기 마련이다. 어딘가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우울하다면 우선 몸과 마음에 힘을 빼고 나의 몸과 몸이, 몸과 마음이 소통할 수 있도록 스트레칭과 명상을 통해 길을 넓혀 보자. 다들 화통(和通)하게 아픈 데 없이 삽시다. 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정책부 한의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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