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그러나 사치스러운 감상도 잠시, 버스 출발을 알리는 방송 멘트에 깨져버렸다. 아마 노래는 겨울도 봄도 다 지나고, 여름도 가고, 해가 바뀌고 또 바뀌어도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내용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오래전에 배운 지식이 흐릿해 버스에 올라 검색해보니 멀리 떠난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는 여인 솔베이지에 관한 북유럽 노르웨이의 설화와 이를 노래로 만든 작곡가 등에 대한 많은 설명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솔베이그라 발음했던 것도 제대로 고쳐봐야 할 것 같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후렴과 더불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도는 선율. 우리 역시 겨울도 봄도 다 지나고 여름이 와도, 또 해가 바뀌어도 자꾸만 확산하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속이 타는 기다림을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솔베이지는 남편의 귀향을 기다렸지만, 우리는 마스크를 벗고 사는 날이 오기를, 여럿이 어울려 함께 먹고 마시며 떠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마음먹었던 여행을 두려움보다 설렘으로 가득 차 떠날 수 있는 날들을 기다리고 있다.
아니, 기다리다 못해 이제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것이 뭐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지냈던 일상을 그리워하게 될 줄이야. 물론 우리네 일상이 모두 만족스럽지만은 않았을 터인데 좋은 부분만 떠올리니까 그리움이다. 아무튼, 예전의 상태로 그대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그리워한다. 일상의 소중함을 미처 깨닫지 못하다가 이제야 절감하면서 아쉬워하고, 때로 그 느낌이 커지는 날은 울적해지기까지 하니 문제이다.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라고도 하고, 기다림이 있는 곳에 삶이 있다고도 말한다. 누구나 겪는 크고 작은 기다림, 그 기다림 한가운데 있을 때가 가장 진솔한 자기 자신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기다림에는 고통이 따르기도 하고, 또 그래서 기다리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기다릴 줄 모른다고 말한다. 기다림을 싫어하고 무엇이든 빨리빨리 하려 한다고들 말한다. 한국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나 표현을 묻는 설문에 외국인은 물론이고 한국인 자신도 '빨리빨리'를 가장 높은 순위로 꼽았단다. 하긴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제공할 때에도 한국인들은 승무원이 오기 전에 벌써 메뉴 골라놓고, 상을 펴놓고 있다 해서 웃었다. 그래서 자신을 비하하고 속상해하는 사람들도 있고, 서구 선진국들은 몇백 년에 이룬 산업화를 단 몇십 년 만에 따라잡다 보니 생긴 문화라며 안타깝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겪고 있는 세계적인 코로나 대유행에서는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가 새로운 평가를 받고 있다. 다시 보니 우리는 기다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알아채고 움직이는 빠른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코로나 확산세가 멈추지 않으니 역시 기다려야 하나 보다. 끝이 있지 않겠는가.
조바심내지 말고 기다려보자. 우리네 유전자에 흐르고 있을 조상들의 지혜, 기다림의 맛을 떠올리며 견뎌보자. 김치를 담그고 적당히 익기를 기다리듯이, 잘 띄운 메주로 된장 고추장이 맛나기를 기다리듯이, 갖가지 생선이 젓갈의 풍미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리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기다려보자. 기다리는 동안 살아가며, 내 안의 나를 맛깔스럽게 익혀가며.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