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태 한국무역협회 대전세종충남지역본부장 |
반면에 제대로 기록하지 못해 낭패 본 사례도 신문에 등장한다. 대전 유성구 봉명동과 궁동을 잇는 온천북교 개통이 6개월 정도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는 기사(중도일보 올해 1월 14일 자)다. 기존 설계 도면을 토대로 설계한 뒤 시공에 착수해보니 하천의 관 위치가 도면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보완 설계 등으로 공사 기간이 늘어난 만큼 시민 세금이 더 들어가게 됐다.
기록의 중요성은 국가는 물론 개인, 단체, 회사 등에 국한되지 않는다. 2008년 2월 어이없는 방화로 상당 부분이 불탔던 국보 1호 숭례문의 복구공사에서는 각종 기록이 요긴하게 사용됐다. 1960년대 초 해체 보수 당시의 도면을 비롯해 발굴 조사 자료, 고증 연구 기록, 옛 사진 등과 함께 2002년 3차원 레이저 스캔 기술로 만들었던 실측자료가 복구에 한몫했다.
국가의 소중한 정보자원인 국가기록을 책임지는 국가기록원은 대전의 행정기록관, 세종의 대통령기록관, 성남의 나라기록관, 부산의 역사기록관에 모두 148개의 서고를 두고 1173만 점의 기록을 보존·활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편년체 역사서로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을 포함한 도면, 문서, 간행물 등이 있다.
기업 측면에서 기록을 보면, 구글은 자료를 찾는 검색엔진과 동영상 공유 플랫폼 유튜브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반면에 기록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기업들이 소송에서 관련 기록을 제출하지 못해 패소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중소기업에서는 전임자가 퇴직하면서 기록들이 제대로 인수인계되지 않아 당장 필요한 자료를 서류함이나 PC에서 찾다가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사례도 나온다.
사람은 기록하는 인간(Homo Archivist)이다. 구석기 시대에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의 벽에 들소, 사슴 등을 그렸던 인류는 종이에 문자를 기록하는 과정을 거쳐 지금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 사진, 소리 등 다양한 매체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는 '기억을 기억하기' 위한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기록은 과거를 통해 현재에서 지혜를 얻고 미래에 더 잘살아 보려는 의지의 실천이다. 지금 우리는 기록으로 남길 만한 이야기를 만들고 공유하며 살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뭔가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으면 종이 한 장이 태평양보다 훨씬 커 보인다. 많은 사람이 '기록'이란 단어에 압도돼 '내가 어떻게 기록을 하나…기록은 글 잘 쓰는 사람이나 하는 거지' 하며 펜을 내려놓는다. 하지만 기록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가 2년간 은신처에서 썼던 일기와 18세기 말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의 산파였던 마서 밸러드가 27년 동안 써 내려간, 시초에는 평범했으나 나중에는 소중한 유산으로 승화된 일기가 기록하려는 사람에게 용기를 준다.
내가 주인공인 인생의 기록 영화 '2021'의 제작이 이제 막 시작됐다. 이 영화가 명작이 될지, 아니면 짧은 예고편만으로 끝나게 될지는 당신의 펜 끝에 달려 있다. 당장 기록하자./김용태 한국무역협회 대전세종충남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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