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개 선생. 사진=대전보훈청 제공. |
대전보훈청은 2일 '2020년 9월의 독립운동가'에 채원개 선생을 선정했다.
채원개 선생은 청년시절 3·1운동을 시작으로 독립군과 대한민국임시정부 활동을 거쳐 광복군에 이르기까지 무장투쟁의 긴 여정을 통해 조국의 독립에 헌신했다.
무장으로서 강인한 기개를, 때로는 중재자로서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실천했고, 광복 이후에도 군에 투신해 대한민국의 기초를 닦은 독립운동가이자 군인이었다.
채원개 선생은 1920년 일본이 독립군 세력을 대대적으로 토벌하자 대한독립단 통임관구 지대장으로 열세인 병력과 물자로 일본군과 격돌해 관통상을 입은 끝에 철수했다. 1921년 통의부 대표로 김창환·심용준 등과 함께 상해로 파견돼 국민대표회의에 참석하였고, 이후 상해에서 임시정부 활동에 참여했다.
1925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육군 주만 참의부 군무부장에 임명되어 정의부와 참의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만주로 건너가 직접 지도자들을 만나 갈등을 봉합하고 성공적으로 중재했다. 1934년에는 광동 주재 중국군에 복무하면서도 한국독립당 광동지부에 가입해 독립운동에도 참여했다.
1940년 광복군에 합류하여 참모처장, 1943년 총무처장 등을 역임하며 후방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하다가, 1944년에는 광복군 제1지대장에 부임해 전면에 나서 광복군을 지휘했다. 귀국 후엔 육군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마친 뒤 제3연대 작전참모로 부임한 이후 제3여단장, 제2사단장을 역임했고 1949년 준장으로 예편하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한편, 대전보훈청은 대한민국 국가보훈처의 소속기관으로 1985년 1월 1일 발족했고, 총무과, 보훈과, 보상과, 복지과, 제대군인지원센터로 나뉜다.
이들은 각종 보훈행사와 기념사업에 관한 사항, 국가유공자단체와 대한민국재항군인회 및 국가유공자자활용사촌 등의 운영지원, 국가유공자복지시설과 보훈회관의 관리,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에 관한 사항, 국가유공자 등에 대한 의료지원 및 보건에 관한 사항, 국가유공자 등에 대한 취업지원 및 취업자사후관리 등의 직무를 한다.
조훈희 기자 chh7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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