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자녀들의 교육이 대부분이어서 그럴 기회가 적지만 그 때는 결혼한 지 얼마 안되는 새댁들과 임산부들의 수업이 많았다.
시부모님과 남편의 눈치, 새로운 곳에서의 부적응으로 답답함을 토로하는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등의 국적을 지닌 며느리들과 시간을 맞추어서 탑정저수지 옆의 군사박물관으로 소풍을 떠났다.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친구들의 설레임은 각자의 손에 들려진 꾸러미를 통해 전해졌다. 텃밭에서 직접 기른 상추와 깻잎 등의 쌈 채소들을 담은 손, 방금한 듯한 따끈따끈한 쌀밥을 담은 손, 딸기, 참외, 사과 등의 과일을 가지런히 담은 손, 멸치, 김치, 호박볶음 등의 밑반찬을 담은 손 들이 모이니 소박하면서도 화려한, 정성이 가득한 만찬이 차려졌다.
처음에는 쑥쓰러워서 조용히 있던 친구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서툰 한국말이라는 장벽을 뛰어넘어 손짓과 몸짓, 표정으로 하나가 되어갔다. 그날따라 햇살이 강해 얼굴색이 서로 비슷하게 익어가는 줄도 모르며 어디가서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시댁과 남편이야기들을 수줍게 꺼내고, 그동안 쌓였던 마음의 짐을 조금씩 털어내면서 이야기가 한창 무르익어갔다.
그때였다. 우리가 있던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60대 정도로 보이시는 한 분이 말을 건네셨다.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에서 온 것은 알겠는데, 한국말 잘하는 이 분은 어디서 오셨데유... 태국 방글라데시에서 왔지유?”그 분이 가리키는 손길은 바로 나였다. 순간 정적이 흘러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다들 같은 순간 웃음이 터졌다. 의아스러워 하시는 여사님에게 이러저러한 설명을 잘 드린 후에, 시간이 다 되어 소풍이 끝났다.
선생님과 제자라는 사이를 뛰어넘어 함께 한다는 것이 더 기분 좋은 하루로 기억된다. 이제는 초등학생 학부형이 된 지금도 그 친구들이 가끔 전화 온다. “방글라데시 선생님! 저에요 ~~~”라고...
논산=한정희 명예기자(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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