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1750년: 영조와 전염병, 그리고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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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750년: 영조와 전염병, 그리고 2020년

윤희진 경제사회부장

  • 승인 2020-03-18 09:54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1윤희진(온라인용)
윤희진 부장
1731년이었다. 영조(英祖·이금)가 재위한 지 7년째 되는 해다. 조선왕조실록은 그해 영남(경상도)과 호서(충청도)지방에서 모두 703명의 백성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했다. 재위 후 처음으로 많은 백성이 전염병(역질·돌림병)으로 쓰러져갔다.

물론, 영조 전에 집권한 20명의 왕이 재위하는 기간과 고려, 삼국시대에도 크고 작은 전염병으로 많은 백성이 세상을 등졌다. '역질'이라는 단어는 조선왕조실록에 모두 718건 등장한다고 한다. 기록을 들여다보면 믿기지 않을 내용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바로 영조 재위 기간 발생한 역질의 기록이다.

1731년을 시작으로, 영조 9년(1733년)에는 전라도에서만 2081명이 사망한 것으로 쓰여 있다. 영조 17년에는 3700여명이나 됐다. 여기까진 시작에 불과하다.

영조 재위 26년인 1750년에는 월별로 기록돼 있다. 1월에는 해서(황해도) 45명, 관서(평안도, 평양, 자강도 일대)에서 865명, 영남 43명, 호서 5089명, 경기 2192명, 호남 1650명, 관동(강원) 1531명, 강도 145명, 송도 132명 등에서 1만 1692명의 역질 희생자가 발생했다.



2월에는 464명, 3월 3만 7581명, 4월 2만 5547명, 5월 1만 9849명, 6월 3만300명, 7월 2만 2261명, 8월에도 2246명이 '여러 도에서'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9월에는 경기 3282명, 관동 572명, 호서 6266명, 호남 1만 6752명, 영남 1만 739명, 해서 1만 1371명, 관서 1853명, 북관 1만 2141명, 강도 2391명, 송경 1520명, 제주 882명 등 모두 6만 7869명이 사망했다고 지역별로 자세히 기록했다.

1750년에만 역병으로 사망한 백성은 24만 355명으로, 이는 조선 백성의 1.5% 수준에 달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기록한' 사망자인 데다, 10월부터는 아예 기록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희생자는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전례 없이 많은 백성이 쓰러져갔지만, 영조는 83세까지 장수했다. 집권 기간만 52년에 달한다. 정사(正史)를 다룬 주요 역사서에서 영조는 대체로 훌륭한 군주로 기록돼 있다.

균역법을 비롯해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의 수많은 폐습을 없애는 다양한 제도를 개편했다. 문물을 정비했으며 백성의 생활을 돌보는 민생정책도 적지 않다. 특히 붕당을 타파하기 위한 탕평책으로 노론과 소론의 연합정권까지 구성하는 등 정국 안정에도 기여도 했다.

영조의 화려한 업적과 못지않게 노론과 소론의 치열한 당파싸움도 실록을 비롯한 숱한 역사서에 세세하게 기록돼 있다. 그러나 나라의 근간을 흔든 역병, 그로 인한 백성들의 피폐한 삶과 죽음 등에 대한 기록은 상대적으로 대우받지 못한 채 가려졌다.

당시만 해도 역병 등 전염병과 가난 등 국가적 재난이 발생하면 ‘임금 탓’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왕을 비롯한 노론과 소론 등은 원인을 찾고 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정치적으로 어떻게 활용할지에 몰두하기 바빴다. 어찌 보면 ‘1750년 사태’는 영조시대 극심했던 붕당정치와 무관해 보이진 않는다.

270년이 지난 2020년. 또다시 ‘코로나 19’라는 전염병이 휩쓸고 있다. 4·15총선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과거처럼 어김없이 여야는 코로나 19 초기부터 원인과 대응방식, 대책 등을 놓고 난타전을 벌였지만, 이내 잦아들었다.

국민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하면서다. 자발적인 착한 임대인(직원) 운동, 마스크 양보하기와 함께 만들기, 어려운 소상공인 도와주기 등 국민이 나서면 된다. 전쟁과 재난재해 등 국가적 위기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해결사는 민초(民草)다.

윤희진 경제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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