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지금의 필자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해서 인용했다. 연말연초를 맞아 왠지 모르게 축 쳐진다. 한해를 결산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시기의 통과의례라는 위로로는 많이 부족하다. 찬란하고 풍요로운 가을이 지나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콘크리트속 도심의 가로수처럼 애처롭다.
혼자라는 것에 익숙해져서 '나홀로족'이라고 내세우며 당당하게 생활해왔다. 혼자서 뷔폐가기, 혼자서 여행하기, 혼자서 영화 관람까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은 거리낌 없이 해왔는데 지금 왜 이렇까. 혼란스럽다.
내 나이 이제 지천명[知天命]에 이르렀다. 공자가 나이 쉰에 천명(天命), 곧 하늘의 명령을 알았다고 한 데서 연유한 것으로 50세를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서 '천명을 안다'는 것은 하늘의 뜻을 알아 그에 순응하거나, 하늘이 만물에 부여한 최선의 원리를 안다는 뜻이다. 곧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성인(聖人)의 경지로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그렇다. 생물학적 나이만 지천명에 들어설 을뿐 마음의 수양, 인격은 성인의 경지에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연말연초를 남들처럼 즐기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
젊었을 때보다 가진 것이 더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단순히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더 분명하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풍요로운 재물이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가치를 축소하거나 폄하하고 싶지 않다. 언제나 부족하다고 불평불만은 입에 달고 사는 필자로서는 더욱더 말이다.
하지만 좁쌀만 한 부를 쌓기 위해 대가로 지불한 것은 생각하면 급 우울해진다. 그 대가로 소모한 젊음, 청춘을 생각한다면 너무 빈약하고 초라하다. 결코 플러스 인생이라 단언하기에는 어딘가 공허하다. "참 열심히 잘 살아왔다"고 자화자찬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살아온 만큼의 나이에 맞춰 마음이 느긋해지고 너그러워진다는 연륜이라는 것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반문, 반성해본다. "과거의 20대로 돌아가도 좋겠지만 30대가 된 지금도 다른 의미에서 누릴 수 있는 게 많아 나쁘진 않다. 더 세월이 지난 후엔 연륜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될 것 같다"는 편집국 후배의 넉넉한 글을 떠올리면 한없이 내가 작아진다.
100세 시대를 맞아 50~60대는 신 청춘이라는 말을 마음에 되새기며 반세기를 살아온 내 인생에도 새로운 바람을 기대해본다. 고소한 냄새를 품기며 숯불 속에서 익어가는 군고구마처럼 이 겨울엔 달콤하고 감칠 나는 사랑을 하고 싶다.
이건우 기자 kkan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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