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내 삶에 와이파이를 빵빵하게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내 삶에 와이파이를 빵빵하게

  • 승인 2019-12-12 17:04
  • 신문게재 2019-12-13 22면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증명사진(박현정)
요즘 재즈바에 포옥 빠져 있다. 칵테일 한 잔 값이면 수준 있는 재즈 밴드 노래와 탭댄스를 즐길 수 있다. 모임 장소를 정할 때면 유성에 있는 재즈바에서 한잔 하는 게 어떻냐고 제안하곤 한다. 눅눅한 노래와 무르익은 색소폰 소리, 그 소리들의 빈곳을 간드러지게 파고들어 공간을 가득 채우는 드럼 소리에 집중하다보면 긴 밤이 '순삭'이다. 내가 재즈바에 발을 들이게 된 건 이번 가을, 연구회 선생님들과 함께 다녀온 연수 덕분이다.

나무들이 색동옷으로 갈아입으려고 막 꿈틀대는 가을, 여덟 명의 연구회 선생님들과 인천 송도로 워크숍을 다녀왔다. 우리가 이번 연수를 통해 함께 생각하고 해결하고 싶었던 과제는 '내 삶을 되찾는 것', '내가 좋아하는 수업을 하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교사, 삶에서 나를 만나다』를 함께 읽었다. 연수 장소를 송도로 정한 것도 이 책의 저자인 김태현 선생님을 만나 뵙고 싶어서였고, 김태현 선생님께서는 기꺼이 저자와의 대화를 허락해주시고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장소도 추천해주셨다.

대전에서 두 시간을 달려 송도에 도착했다. 송도의 첫인상은 '고급스러운 인공도시'였다.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펄럭거리는 외국 국기들이 우리가 국제도시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김태현 선생님을 만나 들깨삼계탕을 후루룩 배부르게 먹고, 깊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카페콤마로 이동했다. 김태현 선생님과 책에 대한 이야기, 교사로서 살아가는 것의 기쁨과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 교사로서 오래 잘 살기 위해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다음 우리는 인천 구도심에 있는 버텀라인 재즈바로 이동했다. 맥주 한잔을 가운데에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에 더해 피아노-더블베이스-드럼 트리오의 연주를 들으며 재즈의 매력에 홀딱 젖었다. 세 연주자가 각자 자기 악기에 몰입하는데 각기 다른 세 선율이 어우러져 하나의 음악으로 완성되는 지점이 짜릿했다. 특히 드럼 연주는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었고, 영화 '위플래시'의 마지막 장면에서 앤드류가 정적 속에 드럼 연주를 이어가던 명장면이 오버랩 되었다. 발랄하면서도 나른하게, 간드러지면서도 박진감 있게 이어지는 연주에 몰입하는 즐거움에 빠져 2시간을 금세 보냈다. 대전에도 이런 공간이 있는지 검색해보았더니, 고맙게도 좋은 후기가 있는 재즈바 몇 군데가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헤이리 예술마을로 향했다. 김태현 선생님께 추천받은 청음 카페를 찾았다. 좀더 쉽게 말하면 '클래식 음악다방'이라고나 할까. 컴컴한 실내가 내 키보다 더 큰 웅장한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듣고 싶은 클래식 음악을 쪽지에 써두면 직원이 직접 LP판과 CD로 음악을 찾아 들려준다. 네모난 공간이 음악으로 풍부하게 채워져 소리에 압도되지 않으면서도 음악이 내 귀와 마음을 감싸주는 느낌이었다. 음악이 귀에 쏙쏙 꽂히지만 생각을 방해하지 않는 멋진 장소이다. 우리는 장난감교향곡부터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까지 취향 따라 듣고 싶은 곡을 신청해 누가 신청한 곡일까 맞히기도 하고, 자연 채광을 조명 삼아 천천히 책을 읽기도 하고 서로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주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연수에서 새롭게 한 경험들은 작게나마 내 삶을 변화시키고 여가 활용의 새 지평을 열어주었다. 그동안 몰랐던 세계에 새롭게 눈뜨는 경험은 나를 설레게 한다. 재미있고 신선한 경험들이 내가 수업을 이끌어가는 방식도 넓혀주리라 믿는다. 내 삶이 풍성하고 다채로워야 학생들을 대하는 생각과 학생들에게 전하는 말의 깊이도 깊어지리라. 내 삶에 잘 터지는 와이파이를 항상 켜둔 채 마음을 움직이는 공연을 보고, 좋은 음악을 듣고, 마음이 탁 트이는 여행을 할 때 내 삶이 좀더 풍성해짐을 느낀다. 잘 켜둔 와이파이가 수업의 지점과 통할 때 창의적인 수업, 재미나고 풍요로운 수업이 만들어진다. /박현정 대전송촌고 교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한화이글스, 라이언 와이스 재계약 체결
  4.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5.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1. 더젠병원, 한빛고 야구부에 100만 원 장학금 전달
  2. [현장취재]한남대 재경동문회 송년의밤
  3. 대전시주민자치회와 제천시 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 자매결연 업무협약식
  4.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5.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대전.충남 통합으로 세계 도약을"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