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창희 미디어부 부장 |
필자가 입사했던 90년대 후반 신문사의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기자는 원고지에 자필로 기사를 쓴 후 부서장에게 제출해 데스킹(취재기자의 원고를 고참 기자에게 제출해 다듬는 행위)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팩트를 벗어나거나 기사를 잘못 썼을 경우 화가 난 선배가 원고지를 집어던지며 고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마감시간이 다가올수록 편집국 안은 더욱 소란스럽고 분주했다.
데스크가 출고해도 된다고 승인하면 기사는 전산부로 전해진다. 전산부에서는 원고지에 작성된 글을 신문제작용 프로그램을 이용해 A4용지에 타이핑하는 업무를 했다. 이후 편제부라는 부서에서 신문크기의 하드보드지에 디자인용 접착제로 줄과 간격을 맞춰 짜깁기 형태로 기사를 잘라서 붙였다. 일명 '대지바리'라고 한다. 필자가 국내 마지막 대지바리 제작환경을 경험한 세대다.
사진은 외부에서 촬영해 사내에서 인화를 직접 했다. 컬러사진은 외부 출력소에서 필름으로 편판해 사용했다. 가끔 마감시간에 늦을 경우는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수송 작전을 펼쳤다. 삽화, 그래프 등은 디자인 부서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필름으로 출력해 사용했다. 이때 처음으로 애플 매킨토시 컴퓨터를 구경했다. 당시에는 애플 컴퓨터가 디자이너들의 로망이던 시절이다.
대지바리가 완료되면 필름형태로 만들기 위해 제판부라는 부서에서 CMYK(Cyan, Magenta, Yellow, Black) 4개의 편판으로 분해해 컬러별 필름을 만든다. 이후 신문을 인쇄하는 윤전부에서 PS판이라는 특정 물질이 묻은 알루미늄판에 소부한다. 마지막 공정으로 인쇄기에 CMYK 4가지 편판을 붙여 잉크를 부어주면 윤전기가 돌아가면서 종이에 인쇄해 신문을 만든다.
가끔 윤전부에 들르면 건물 3층 높이의 웅장한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와 종이가 길게 늘어져서 이동하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신문 한 부를 만들려면 이렇게 많은 공정과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디지털이 발전되면서 신문제작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가장 큰 변화의 바람을 맞은 업무는 자료조사 부서였다. 수많은 사진과 도서, 자료들로 가득차서 도서관 같던 곳이 컴퓨터의 저장 공간과 서버 하드디스크에 저장돼 버렸다. 해당부서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최근의 제작시스템은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어있다. 기사입력부터 신문제작, 웹사이트와 모바일까지 통합솔루션으로 구축되어 있다. 기사를 작성한 후 취재기자가 송출하면 지면 파트와 모바일에 자동으로 전송한다. 웹에 올라온 기사는 프로그램을 통해 포털과 제휴되어 있는 업체에 기사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뿌린다. 모든 것이 자동화돼 있다.
시스템의 간소화로 자연스럽게 새로운 업무도 늘어났다. 2010년까지는 신문을 독자에게 어떻게 배달할지를 고민했다면, 지금은 독자의 휴대폰까지 기사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보낼지를 연구한다. SNS 특성에 맞춰 기사 방식도 변화를 준다. 젊은 층이 주류를 이루는 사이트에는 그래픽이나 사진기반 카드뉴스 등을 주로 서비스한다.
멀티미디어가 발달한 만큼 독자들의 미디어 습득방식도 다양화됐다. 이를 충족하기 위해 취재기자들은 기사뿐 아니라 사진, 동영상까지 촬영한다. 더 현장감 있고 생생한 뉴스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오늘도 동료들은 시간과 싸우며 바쁜 하루를 마감하고 있다.
우창희 기자 jdnews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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