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숙 충남여성정책개발원장 |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을 16일간 진행하는 것은 1989년 캐나다에서 벌어진 여성 살해 사건과도 관계가 있다. 1989년 12월 4일 캐나다 몬트리올의 공과대학에서 한 남자가 여자 대학생 14명을 총기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여성혐오에 빠진 남성으로 사망자들은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살해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캐나다 내에서 여성 대상 폭력에 대한 문제 제기가 시작되었다. 이때 일부 남성들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을 묵인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추모일에 하얀색 리본을 착용하기 시작하면서 이후 '하얀 리본 운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하얀 리본 운동은 1991년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국제적인 캠페인으로 확산되었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부터 여성폭력을 방지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다양한 특별법을 시행하고 있으나 권력형 성폭력,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스토킹, 디지털 성범죄 등 주로 여성을 겨냥한 폭력은 날로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이러한 여성에 대한 폭력은 나타나는 양태는 다양하지만 '성차별'의 극단적 표현이라는 점에서는 그 근원은 같다고 볼 수 있다. 상대의 성에 대한 혐오를 가지고 저지르는 폭력은 불평등한 관계에서 발생하며 사회적으로 약자인 여성을 주로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지난 2018년 법조계, 문화예술계, 체육계, 정계 등 곳곳에서 불거져 나온 #Me Too 운동을 통해서도 충분히 볼 수 있었다.
정부는 지난 2017년 7월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에서 불평등한 성별 관계에서 발생하는 신체적·성적·정서적 폭력을 '젠더폭력'으로 규정하고 젠더폭력방지기본법 제정 등을 제시하였으며, 올해 12월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이란 법명으로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안은 그동안 가정 내의 문제라고 치부했던 부부폭력, 연인간의 사랑싸움으로 여겼던 데이트폭력, 성매매, 성희롱, 지속적 괴롭힘 등 여성에 대한 폭력 방지와 피해자 보호에 대한 국가책임과 개입에 대해 규정한 법안이다.
여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법제도적 대응도 중요하지만 사회문화적인 인식의 변화와 일상생활 속에서의 작은 실천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최근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본 많은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불편함 보다는 남녀 모두가 풀어야 할 과제로 인식하듯 남성들의 지지와 연대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남성들이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세상을 보면 수많은 여성들이 경험하는 신체적·정신적 폭력뿐만 아니라 소득에서의 격차, 저소득 직종에 여성의 쏠림 현상, 조직 내 여성의 승진을 막고 있는 유리천장, 맞벌이지만 가사와 육아에 할애하는 남녀의 시간 차이 등의 현실을 직시하게 될 것이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을 묵인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남성들이 시작했던 화이트 리본 캠페인의 의미를 되새기며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차별적 인식을 성별 차이에 대한 존중과 배려로 변화되기를 바래본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더 이상 개인적인 사정이라는 이유로 외면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며, 우리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인권의 문제이다. 세계 여성 폭력 추방 주간을 맞이하여 여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꼼꼼하게 짚어보고, 서로 존중하는 사회, 폭력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법 모색과 실천을 함께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양승숙 충남여성정책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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