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 종족주의'의 대표 저자인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현 이승만학당 교장)가 1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울외신기자클럽 초청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인은 주체적으로 해방의 업적을 이루지 못했다'거나 '한국에서는 악의적인 반일 세뇌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일본강점기 학살은 없었다' '한일관계 위기의 원인은 한국 정부에 있다' '위안부 20만 명은 거짓'이라는 식의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전 교수의 주장을 접한 일본 네티즌들은 "조선을 도와줬는데 은혜를 모르는 한국인들"이라며 비난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중략)
이 전 교수는 "19세기 이후 중국 제국의 해체와 함께 조선왕조도 심각한 해체와 붕괴 위기에 들어갔고 그 결과 1910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합병했다"면서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1948년 대한민국이 독립을 이뤘지만 이는 한국인이 주체적으로 이룩한 정치적 업적이 아니다. 일제가 미국과 충돌해 벌어진 세계사적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인은 자신의 정체성에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한국 사회와 정치가 심각한 갈등을 겪는 것"이라고 분석했다.(중략) 그는 또 한국의 반일교육이 악의적이며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평가했다.
이 전 교수는 "한국인은 아직 중세적인 선과 악의 관념에서 일본과의 관계를 인식하고 평가한다. 내 손녀가 유치원에 다녀온 뒤 내게 '일본은 우리의 적'이라고 말했다"면서 "한국의 교육현장에서는 악의적인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세뇌를 통해 전달되는 불변의 적대감, 그것이 종족주의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일제 강점기 학살과 같은 만행이 없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후략)" =
하지만 필자는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으며 불쾌감까지 느꼈다. 한 마디로 동의불감(同意不感)이었다는 것이다. 요즘은 유튜브로 지난 영화나 뉴스까지 보는 시절이다. 유튜브에 들어가 검색어로 '난징! 난징!(南京!南京!)'을 쳐보자.
그럼 중국에서 만든 영화가 등장하는데 2시간 14분 52초의 방대한 대작(大作)이다. 상하이에 이어 난징(南京)을 함락한 일본군들은 중국인들을 자그마치 20~30만 명 가까이나 학살했다.
또한 2~8만 명의 여성들을 강간했으며, 심지어는 임산부의 배까지 가르는 천인공노할 만행까지 서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위안부 문제도 나오는데 일본군 지휘부에서 내린 전통(戰通)은 다음과 같다.
- "위안부 여성과 성관계를 하는데 있어서의 경비(經費)는 일본인 여성의 경우엔 5엔, 조선과 중국인 여성은 2엔이며 이용시간은 15분이다." 이 주장을 톮아보면 강제로 동원된 위안부까지도 '이용'이라며 인권 자체까지를 말살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
이용(利用)이란, 말 그대로 어떤 대상을 필요에 따라 이롭게 씀, 혹은 다른 사람이나 대상을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 위한 방편(方便)으로 씀을 뜻하는 때문이다. 따라서 이영훈 전 교수의 "일본강점기(당시 조선인들에 대한) 학살은 없었다."는 주장이 허구라는 주장을 펼치고자 한다.
북로 군정서군은 1920년 8월 일본 영사관에 침입하여 일본군 제14사단, 제13사단, 제21사단이 북로 군정서군을 토벌한다는 계획을 알아냈다. 2,500명의 북로 군정서군은 청산리의 백운평 골짜기에 매복하여 일본군 3개 사단 5만 명을 상대로 전투를 벌여 일본군 3,300명을 죽였다.
이후 일본군은 독립군에 대한 보복으로 만주 지역에서 민간인을 포함하여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하는데, 이를 '간도 참변'이라고 한다. 이처럼 일본군들의 민간인 대량학살은 역사적으로도 뻔한 '팩트'이거늘 왜 이를 없었던 것이라 하는가?
동의보감(東醫寶鑑)은 조선시대 의관 허준이 중국과 조선의 의서를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의서이다. 따라서 동의보감은 죽어가는 사람까지 살릴 수 있다.
반면 당시 일본군들에 의한 조선인 학살은 없었다는 이 교수의 주장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일제의 학살에 살아난 조선인은 몇이나 되었는가? -> 저자인 당신이 답하라!
홍경석 / 수필가 & '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 저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