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상 충남대 교수 |
고려의 국자감(國子監)이나 조선의 태학관(太學館)과 같이 예로부터 고등교육기관을 운영해 왔지만, 오늘날과 같은 근대화된 대학교육제도는 19세기 말 외세에 의해 문호가 개방되면서 태동하기 시작했다. 일제의 식민지배 체제를 지나 1945년 해방 이후 특히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비교적 체계를 갖춘 수많은 대학들이 우후죽순처럼 설립되었다. 이를 통해 우리 대학은 국가경제발전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 우수한 인재의 육성은 물론, 시민의식의 고양이나 사회문화발전에 큰 기여를 하는 등 그동안 대학을 중심으로 르네상스를 구가해 왔다.
그러나 지속적인 경기침체로 인한 등록금 동결,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에 따른 입학생 부족 등으로 인해 우리 대학들은 오늘날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에 기초한 빅데이터나 인공지능(AI)과 같은 첨단과학기술이 기존의 생활패턴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고, 생명공학기술에 바탕을 둔 바이오테크놀로지가 불로초를 찾던 진시황의 고민을 덜어주고 있다.
이처럼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우리 대학들은 보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사회 문제에 해결은 물론, 사회 구성원들에게 미래에 대한 비젼을 제시하는 역할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교수자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필자는 종종 강의실과 실험실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내가 지금 가르치고 있는 내용들이 제자들에게 과연 미래 사회를 개척해 갈 수 있는 밑천이 될 수 있을까를 반문해 보곤 한다.
최근 우리나라 대학의 현주소를 보면, 고등교육 등록률은 2017년 기준 OECD 평균을 크게 상회한 세계 2위이다. 그러나 대학 교육시스템 질은 138개국 중 75위였고, 4차 산업혁명에 필수인 ICT 분야의 고도 지식과 기능을 보유한 인재의 비율은 미국은 물론이려니와 중국에도 한참 뒤진다. 특히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에 의하면 대학교육 경쟁력은 81위에 불과하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대학 내부적 요인에서 찾아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마이클 크로우 애리조나주립대학의 총장이 새로운 미국대학의 모델로서 지식 생산을 위한 학술 플랫폼 설계, 다양한 사회계층의 학생이 진입할 수 있는 개방적 설계, 대학의 사회발전에 극대화를 위한 설계가 필요함을 주장한 것처럼 우리 사회 환경에 맞는 새로운 대학 모델 연구가 절실하다.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이다. 기업만이 아니라 대학도 미래를 예측하고 그에 발 빠르게 대비하지 않으면 도산할 수밖에 없는 임계점에 도달했다. 따라서 대학 당국의 경영마인드도 탄력적으로 변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 대학들은 각각의 인프라에 기초한 성벽을 쌓고 각자도생해 왔지만, 유니콘 기업들을 탄생시킨 '공유경제' 개념에 기반을 둔 창업 현상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는 학, 연, 산, 관 그리고 지역 사이의 장벽을 허물면서 서로가 인프라를 공유하고 끊임없이 협업해야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따라서 대학이 단순히 교육공간으로서가 아니라, 부단히 외부 주체들과 연대하고 상생을 도모하는 '플랫폼' 기능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이와 함께 대학 스스로 학문 간 또는 전공 간 칸막이를 과감히 허물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할 수 있는 미래융합형 연구는 물론 미래융합형 인재양성을 위해 연구시스템과 학제개편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자치와 자율 그리고 공동체 의식에 기초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데 견인차 역할을 해왔던 것이 대학이기에, 오늘날 대학교육은 인류보편의 가치관과 윤리의식에 기반을 두면서도, 창의와 혁신을 담아낼 수 있는 체제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 차원의 제도수립과 지원정책 등도 필요하지만, 대학 스스로 안이하고 방만한 점은 없었는지 되돌아보고 뼈를 깎는 자세로 난국 돌파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도 있듯이, 대학이 직면한 숱한 난제를 구성원 모두가 힘을 합쳐 담대히 응전한다면 우리 대학은 다시금 국가발전을 위한 혁신성장과 창의적 인재육성의 산실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김영상 충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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