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척하는 삶』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얘기한다. 재미작가 이창래는 위안부의 참상에 충격을 받아 소설을 썼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 진실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교수, 목사, 방송국 관계자 그리고 위안부들과의 인터뷰. 그렇게 해서 한 편의 의미심장한 소설이 탄생했다. 여기서도 우리가 익히 듣고 몸서리치는 끔찍한 서사가 펼쳐진다. 반항한다는 이유로 수십 명의 군인이 어린 'K'를 공터로 끌고가 집단 능욕하는 장면. 그리고 도마 위의 고깃덩이를 난도질하듯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해체한 후 득의양양한 군인들. 소설은 이 상황을 간략하고 은유적으로 묘사한다. 상상은 독자의 몫이다.
『반일 종족주의』로 나라가 시끄러웠다. 읽지는 않았지만 관련 기사가 많아 내용을 충분히 인지했다. 더구나 저자가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등 아닌가. 뉴라이트 계열의 경제학자 이영훈은 식민지근대화론의 대부 격이다. 이들은 조선인의 강제 동원과 위안부의 목적을 부정했다고 한다. '객관적 사실'이기 때문에 학자적 양심에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도 인정한 역사적 사실을 이들 학자들은 어떤 신념으로 집요하게 본질을 외면하는가. 뉴라이트 진영은 끈질기게 일제의 식민 통치를 찬양하고 친일파를 옹호한다. 이 패거리 지식인들은 친일 세력을 중용한 이승만, 박정희와 전두환부터 이명박, 박근혜까지 궤를 같이한다. 2005년 정치학자 한승조 전 고려대 교수는 일본 극우잡지에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는 축복"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소설가 복거일 역시 친일파를 변호하는 데 열정을 바친 인물이다.
재작년엔 정말 코미디 같은 일이 메이저급 일간지에서 벌어졌었다. 중앙일보는 해마다 미당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한다. 미당문학상은 서정주의 시적 업적을 칭송하고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송경동 시인이 후보에 올랐다. 송 시인은 노동자 출신으로 진보 성향의 시민 활동가다. 그런 시인에게 미당문학상 후보라니, 송 시인은 단칼에 거부했다. 시인은 거부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도대체 나와 미당이 어디에서 만날 수 있단 말인가." 서정주가 어떤 위인인가. 일본 제국주의의 주구 노릇도 모자라 전두환 정권까지 군부독재의 언저리에서 떡고물을 얻어 먹으며 기생한 시인이다. 후보를 추천한 심사위원들도, 언론사 관계자도 내로라하는 지식인일진대 분별력을 의심케 한 해프닝이었다.
'지식인'은 본디 성직자나 학자를 가리켰다. 그런데 19세기 말 프랑스 드레퓌스 사건을 계기로 '지성인'이 출현했다. 지성인은 한마디로 '권력에 대항해 가시밭길을 택하는 자'로 정의된다. 에밀 졸라는 부당하고 거짓된 불의에 맞서 싸운 지성인이었다. 푸코는 권력에 봉사하는 지식과 권력에 저항하는 지식이라는 진리 레짐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힌 극우 어용 학자들은 무엇인가. 이들은 지적 욕망이 지식의 발전을 꾀하는 건 아니라는 걸 증명한다. 지금 참담한 수치심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건 누구의 몫인가. <미디어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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