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을지대학교의료원장 |
또 다른 이야기를 소개한다. 몇 년 전 고등학교 동창이 오랜만에 연락했다. 그 친구 아버지가 90세가 넘으셨는데 암이 발병해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물었다. 그런데 문제는 중견 기업을 경영하신 아버지가 워낙 건강하셔서 100세까지 사실 줄 알고 회사의 기술 전수나 후계자 결정 등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한다.
장수사회가 되면서 우리는 어느 틈엔가 죽음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죽음은 패배로 인식되기 때문에 이야기하는 것조차 터부시한다. 그리고 장수 숭배주의가 팽배해 있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오래 살려고 하고, 남보다 일찍 죽는 것을 애통해 하며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그러나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일이다.
과연 좋은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많은 연구 결과를 보면 첫째,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이루고자 하는 것을 완성하고 둘째, 가족이나 주변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셋째, 평안한 내 보금자리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서 고통 없이 평화롭게 마무리 지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정리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들과 함께 충분한 토의를 거쳐 다가올 죽음에 대해 미리 대비하고, 의료진과의 상담을 통해서 불필요한 연명의료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연명의료 결정제도는 2018년 2월부터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시작되었다. 이들 환자는 사망에 임박했을 때, 인공호흡기, 항암제 치료, 혈액 투석, 심폐소생술을 거부한다는 의사를 미리 밝혀둠으로써 불필요한 연명치료에 의한 고통스러운 임종과정의 연장 없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법적인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시행과정에서 생긴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연명의료결정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올해 3월부터 시행되었다.
달라진 점은 첫째, 연명의료시술의 종류가 확대되었다. 기존의 4가지 연명치료법에 체외생명유지술, 수혈, 혈압상승제 등이 포함되고, 그 밖에 담당의가 환자를 위해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필요가 있다고 의학적으로 판단하는 시술 등으로 확대되었다. 따라서 모든 연명치료술이 대상이 된 것이다.
둘째, 대상 질환이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간경화 등 4가지 질병에서 이제부터는 질환과 관계없이 모든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이 법에 적용을 받게 되었다.
셋째,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사람들에 대한 기준이 현실화되었다. 환자가족 중 배우자와 1촌 이내 직계 존속, 비속의 전원합의만 있으면 가능하도록 개정되었다.
한편 연명의료결정법이 2018년 시행된 후 최근까지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다가 연명의료유보 및 중단을 결정한 환자가 6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본인의 의사에 의한 것이 1/3, 나머지 2/3는 가족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또한 사전연명 의향서는 30만명가량이 작성하였다. 연명의료에 대한 국민의식 변화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100년 가까이 살아온 삶을 마무리한다는 것이 간단할 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황망하게 죽게 되어 남은 가족들에게 짐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세상을 떠나는 동안 불필요한 고통을 받아서도 안 된다.
그래서 평상시에 죽음에 대하여 가족들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의사를 밝혀놓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반드시 자신의 인생 마무리에 대해서 학습하고 생각하고 찾아보고 정리해서 기록해야 한다. 자신이 어떻게 이 세상에 기억이 되었으면 좋을지 성찰해 보고, 병에 걸렸을 때 내가 원하는 치료에 대해서 미리 밝혀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국가는 임종기 환자들이 인생을 아름답게 정리하게 도와줄 수 있는 제도와 시설 등을 국민에게 제공하여야 하고, 동시에 죽음에 익숙하고 사려 깊은 의사, 간호사 등 전문 인력의 육성에 나서야 한다. 죽음이라는 것은 지극히 개별적인 것이기 때문에 각자의 사정에 맞는 맞춤 인생 마무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의 연명의료 거부에 대한 2015년 조사 결과를 보면 가족 동의에 의한 연명치료 중단은 77%가 찬성하였고, 본인의 연명치료 중단을 원하는 사람이 90%였다. 그런데 부모 또는 배우자가 회생 불능 상태일 때 연명치료를 중단하겠다는 사람은 63%로 타인의 생사를 가르는 선택권 행사에 대한 부담감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왜 죽어서까지 배우자나 후손들에게 힘든 일을 남겨줘야 합니까? 배우자나 자식들에게 그 힘든 결정을 미루시겠습니까? 아니면 본인 스스로 정하시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필자 어머니의 사전연명 의향서 작성 결심에 감사드리며 마음속 깊이 응원한다. /이승훈 을지대학교의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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