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공회 유낙준 의장주교 |
그러나 우에마츠 대주교는 "일본의 천왕은 사실상 제사장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서 일본이라는 공동체의 중심에 서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일본에서 천왕이 제사상이라면 이것은 그가 일본사람들과 하늘을 연결하는 존재라는 뜻일 것입니다.
일본 사회에서 수상은 선거를 통해 항상 바뀌니까 변하지 않는 공동체의 중심에 되는 제사장으로 적합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일본의 천왕을 제사장으로 한 공동체의 결속을 세우는 것이 일본이라는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제사장을 '하느님 앞에 인간을 드러내고 인간 앞에 하느님을 드러내는 역할 이행자'라고 봅니다. 인간의 사정을 하느님께 알리고 하느님의 마음을 인간에게 알리는 '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 곧 기독교의 제사장입니다. 아무리 현대의 과학기술이 발전했다 하더라도 인간은 하늘과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마치 몸과 영혼을 분리해 살 수 없듯이 말입니다.
요즘 편협하고 편향적인 자기혐오와 타인혐오에 가득 찬 언어가 넘치는 한국사회에서는 몸과 영혼이 분리되어도 살 수 있다는 균형 잡히지 않은 모습이 많이 발견되는 듯합니다. 한국사회야말로 몸과 영혼이 분리되지 않고 균형 잡힌 삶을 이끄는 공동체의 제사장이라는 존재가 더욱 요청되는 사회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 제사장은 누구로 생각할 수 있을까요? 현충일이나 개천절에는 대통령이 그 제사장직을 수행해 제사장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임기가 5년이니 5년마다 제사장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제사장에게 흔들리고 부유하는 마음을 오래 의지하고 싶지만, 5년마다 제사장을 바꾸니 그 마음을 둘 데가 없게 됩니다. 마음 둘 곳이 없으면 사람들은 불안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공동체 구성원끼리 모이면 서로 갈등하는 모습이 드러난 지 오래입니다. 아이들은 성적을 중심에 두고 경쟁하여 갈등하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둘러싸고 갈등하고, 장년들은 삶에 지쳐서 갈등하고, 노인들은 마지막 남은 욕망으로 갈등하는 모습이니 그렇게 보면 모두가 갈등하는 속에 삽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더욱더 제사장의 존재가 요청됩니다.
다음과 같은 분이 우리의 제사장이 되시면 좋을 것입니다.
자신의 모자람으로 자신보다 크신 분이 가려져서는 안 된다는 겸손으로 사시는 분이 우리 사회의 제사장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또 민족의 아픔을 외면하지 아니하고 이데올로기의 대립 구도 안에서 권력에 숨어 기생하지 않는 분이 제사장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에 대해 겸손하고 천진난만하고 경청자로서 경건함을 품고 사시는 분이 우리 한국사회의 제사장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 제사장이 대체 누구십니까? 우리는 그런 제사장을 찾고 기다립니다.
/대한성공회 유낙준 의장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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