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필톡] 과로사 집배원 또 보고 싶지 않다

  • 오피니언
  • 우난순의 필톡

[우난순의 필톡] 과로사 집배원 또 보고 싶지 않다

  • 승인 2019-07-03 11:10
  • 신문게재 2019-07-04 22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우체부
지금은 명칭이 집배원이지만 예전엔 우체부라 불렸다. 부르릉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면 개가 컹 짖는다. 그리고 어김없이 우체부가 신문을 들고 마당에 들어선다. 지금은 어떤 지 모르겠지만 시골은 예전엔 신문도 우체부가 배달했다. 하루 늦은 '구문'이지만 우체부는 대학 휴학하고 시골에서 한량처럼 시간이나 죽이는 내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메신저였다. 친구의 편지를 전해줄 땐 더 반가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매일 세상과 친구의 소식을 전해주던 사람. 우체부는 영화 '일 포스티노'의 우체부 마리오처럼 시는 쓰지 않았지만 낭만적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직업군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우체부, 아니 집배원이 지금 픽픽 쓰러져 과로사하는 지경이다. 올해만 6월까지 전국 9명으로 충남은 3명이나 된다. 동천안, 공주, 당진우체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왜 유독 집배원들이 과로사할까. 사고사도 아닌 과로사여서 도대체 집배원들의 업무 강도가 얼마나 심한 지 궁금해 집배원들과 전화로 인터뷰했다. 당진우체국 집배원 A씨는 "예전엔 우편물만 배달했지만 지금은 택배도 하잖나. 특히 지방은 업무량이 굉장하다. 대도시는 우편물 자동구분기가 있다. 우리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들다." 지난달 19일 자택에서 숨진 동료 강모씨와 친하게 지냈다는 A씨는 한숨을 쉬며 자신들의 하루 일과를 직접 와서 봤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대도시와 소도시의 또다른 차이점도 있다. 대도시에선 일반위탁택배원을 채용한다. 지방과 달리 대도시 집배원은 우편물만 배달하면 된다는 사실이다. 과로사 집배원이 왜 지방에서만 나오는 지 의문점이 풀렸다. A씨는 당진을 예로 들면서 부연설명을 했다. "인구수가 적은 시골은 물량이 많지 않아 그나마 수월하다. 하지만 당진같은 지역은 인구도 많고 지역이 넓은 특수성 때문에 물량이 많고 배달 시간도 많이 걸린다. 결원이 발생하거나 아프면 나머지 인력이 다 처리하기 때문에 아파도 쉴 수 없다. 악순환이다." 또다른 집배원 B씨는 먼저 인력 평준화가 해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력이 남는 지역에서 결원이 생긴 지역에 인력을 넘겨줘야 한다. 그런데 집배원은 기능직이어서 그 문제를 노조에서 결정한다. 어떤 노조가 자기네 인력을 주겠나. 적절한 인력배치 문제는 우정사업본부가 나서야 한다."

집배원들의 잇단 과로사의 원인은 열악한 노동조건이다. 이들의 연간 노동시간은 2745시간이다. 한국 임금노동자 평균 2052시간보다 700시간이 많다. 집배원의 직무스트레스는 소방관보다 높다. 과로사는 오랫동안 피로가 누적돼 불시에 심뇌혈관 질환, 자살 등으로 나타난다. 행복하려고 일을 하는데 도대체 왜 일을 할수록 불행해지는가? 19세기 산업혁명은 기계화로 인한 대량생산을 가능케 했고 더불어 노동 시간도 길어졌다. 4차산업혁명이 결코 장밋빛으로 보여지지 않는 까닭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는 모든 땀구멍과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며 태어난다"고 했다. 모골이 송연해진다.



초원의 제왕 사자는 배가 고플 때만 사냥한다. 나머지 시간은 그늘 아래서 늘어지게 자거나 무리들과 한가롭게 논다. 사자는 배가 부르면 먹잇감이 앞에 있어도 건드리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은 욕망이라는 불치병이 있다. 이 욕망이란 요물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어지는 심리다. 자본주의는 기업이 성공하면 노동자도 잘 살게 된다는 논리다. 이른바 '낙수효과'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자본가만 더 부유해질 뿐 노동자는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끊임없이 올리는 시지프스와 같은 신세가 됐다. 결국 전국우정노조는 총파업을 선언했다. 노사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오는 9일 파업에 돌입한다. 우정 역사상 첫 파업이다.

<우난순 미디어부 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1.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2.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3.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4.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5.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