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쉬움은 늘 가슴 속에 남아 텃밭 가꾸는 꿈을 키운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옆에 공터가 있는데 올 봄 입주민에게 분양했다. 그런데 물을 집에서 퍼 날라야 하는 게 엄두가 안 나 마음을 접었다. 저녁 밥 먹고 아파트 옆 공원에 운동하러 오고 갈 때마다 텃밭을 구경한다. 채소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컸다. 번호가 매겨진 팻말을 보니 37가구나 됐다. 손바닥만한 밭이지만 농작물을 가꾸는 보람이 클 것이다. 오이, 토마토, 상추, 아욱, 고추, 가지 등 가짓수도 다양했다. 한번은 직접 들어가봤다. 그런데 수도가 있었다. 내년엔 기필코…. 1만원씩 걷어 농기구도 사고 수도도 설치했단다. 공동체 농장인 셈이다. 유기농 채소를 키우는 도시농부가 여기에 있었다.
도시농업의 선구자는 쿠바다. 수도 아바나 면적의 40%가 유기농장이다. 시 전체가 가정텃밭, 기업농장, 협동조합농장, 축산농장 등을 운영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1990년대 쿠바는 경제붕괴에 직면했었다.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의 재정은 소련에서 지원받는 막대한 원조금과 보조금으로 유지됐다. 그런 소련의 붕괴와 1959년 혁명 이후의 미국의 경제 봉쇄 때문에 10년동안 비상사태 상황이었다. 당시 쿠바는 식량 자급률이 40%여서 여차하면 국민들이 굶어 죽는 수밖에 없었다. 죽지 않으려면 당장 뭐든 해야 했다. 아바나는 도시를 경작했다. 농약이나 화학비료도 없어 맨손으로 시작한 도시농업이 10년 후 200만명이 넘는 아바나 시민을 먹여살리는 유기농업으로 정착했다.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OECD 국가에서 최하위다. 45%대로 사상 최저치다. 말하자면 당장 식량을 외국에서 수입할 수 없다면 국민의 50%는 굶어 죽어야 한다. 원인은 자유무역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값싼 외국산 농산물이 마구 들어와 우리의 식탁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농지는 감소하고 국내 생산 기반이 약해질 수밖에 없을 터. 미래의 식량위기는 예측가능하다. 답은 자급자족이다. 지금 도시엔 허물어져 가는 빈집이 수두룩하다. 정부와 지자체는 그 자리에 텃밭을 만들어 시민 스스로 농사짓게 하는 거다. 도시농업은 결코 어렵지 않다. 건물 옥상, 베란다 등도 있다. 요즘 도시농업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조합을 만들어 도시농부를 자처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여름에 엄마는 저녁 때가 되면 밭에 가서 상추, 쑥갓, 가지 등을 뜯어오라는 심부름을 자주 시켰다. 귀찮았지만 밥상 앞에선 손바닥만한 상추에 밥을 얹어 된장찌개와 고추장을 넣고 볼이 미어터져라 먹었다. 시골에서 자라서인지 물건을 살 때 농작물과 비교하는 버릇이 있다. 이 스커트 가격이면 콩이 얼마만큼이지? 피자 한판이면 쌀이 몇 킬로그램이더라? 우리 동네 용두시장 한 할아버지가 화분 2개에 방울토마토와 고추를 심어 키우는 중이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는 마치 손주 돌보듯 그것들을 가꾼다. 드디어 고추가 열리고 토마토가 알알이 달렸다. 지나가면서 볼 때마다 마음이 정화된다. 도시농업은 거창한 게 아니다. <미디어부 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