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익(한남대 교수) |
모든 거짓말이 그런 것처럼 완전히 거짓으로 이루어진 거짓말은 효과가 없다. 대부분의 참말에 약간의 거짓말을 섞은 것이라야 그럴듯해진다. 가짜 뉴스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인정할만한 신빙성 있는 사실을 내세우면서 거짓을 살짝 얹어놓을 때 가짜 뉴스에 홀리는 사람들이 많게 된다.
가짜 뉴스가 이용하는 거짓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거짓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거짓 해석이다. 지금부터 꼭 10년 전에 나왔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 뉴스는 거짓 사실의 전형적인 예이다. 거짓 해석에는 부분적인 사실에 대해 과잉 해석을 하는 경우도 있고, 관련성을 쉽사리 증명할 수 없는 사실을 엮어 유추하는 경우도 있다. 성인지 예산 전체를 침소봉대하여 페미니즘 예산이 34조원이나 편성되었다는 보도는 전자에, 탈원전 정책으로 전기료가 상승했다는 보도는 후자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짜 뉴스는 확증편향에 따른 음모론과 짝을 이루어 더 쉽게 퍼진다. 확증편향은 미리 어떤 관점을 세워놓고 그와 연관된 사항들을 짜깁기식으로 모아서 강화하려는 편집증적인 성향을 가리킨다. 이러한 확증편향의 음모론은 특히 정치적으로 특정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뉴스의 숨은 의미를 밝힌다는 식의 논조로 전개된다. 이때 음모론의 논조를 펼치는 데 필요한 사실들이 부족하다면 가짜 뉴스를 만들어서라도 논리의 빈틈을 메워 넣는 것이다.
요즘 보도에서 '팩트 체크'가 유행하는 것도 가짜 뉴스의 영향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유무만 점검하는 팩트 체크는 가짜 뉴스의 일부만 대응할 수 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좀 더 음험한 가짜 뉴스는 "이 뉴스 봐, 이놈들이 그럴 줄 알았어."라는 반응을 유도하는 확증편향적인 해석을 동원하기 때문에 팩트 체크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
앞으로 가짜 뉴스가 없어질 수 있을까. '오보'를 가장한 대형 미디어의 가짜 뉴스도 문제지만, 21세기 들어 보편화된 개인 미디어의 가짜 뉴스도 문제이다. 여론을 어떻게든 자신의 편으로 이끌어오려는 욕망이 없어지지 않는 한, 가짜 뉴스를 아예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언론의 책임을 묻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은 필수적일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마저도 언론의 자유 침해라는 우려를 감안할 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당장의 대책은 독자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필자가 볼 때 가짜 뉴스가 기생하는 원천은 독자의 무지와 게으름이다. 사실 여부나 잘못된 해석을 판별할 수 없는 무지, 그리고 확증편향에 따라 쉽게 믿어버린 채 진실을 더 캐보지 않는 게으름이 가짜 뉴스를 확산시키는 밑거름이 된다. 그런 만큼 독자들도 무지와 게으름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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