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개념'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기본 의미는 "어떤 사물에 대한 일반적인 뜻이나 내용"으로, 철학적으로는 "하나의 사물을 나타내는 여러 관념 속에서 공통적이고 일반적인 요소를 추출하고 종합하여 얻은 관념"으로 정의되고 있다.
필자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와서 정치학개론, 법학개론 등과 같이 교과목 이름에 '개론'이라는 명칭이 붙은 수업을 많이 듣게 됐다. 그런데, '개론'이라는 뜻이 "어떤 학문 따위의 내용을 간략하게 추려 서술한 내용"이라는 의미에서 알 수 있듯이, 개론 과목들은 저학년 학생들이 본격적인 전공 수업에 앞서 이해의 편의를 위해 듣는 과목들로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은 일종의 입문서 내지는 개괄서로서의 의미로 나름 이해했다. 이러한 관념이 젊은 시절부터 형성된 연유 때문이었을까? 연관어인 '개념'이라는 단어도 '전문성, 심층성과 같은 영역에는 다소 미치지 못하는 그저 일반적인 생각이나 사고'라는 인식이 남아 있어서 처음 '개념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다지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 거북함이 들었고, 더 나아가 훌륭한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기에는 어폐가 있을 수 있다고 나름대로 생각했다.
그러나 '개념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점점 이 말이 주는 긍정적 의미를 깊이 느끼게 됐다. 각자의 주장이 난무하고,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좀처럼 풀 수 없는 실타래 같은 것이 우리네 사는 모습일진대, 이를 해결할 길은 결국 공통적이고 일반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고, 이런 생각을 갖춘 소위 '개념 있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인간사 갈등을 좀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음은 물론이요, 갈등 자체를 미리 방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개념 있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진 개념 있는 사회야말로 우리가 추구할 바람직한 공동체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어찌 보면 갈등 해결의 사회적 도구인 법도 사회 구성원의 일반적인 행동기준을 정한 것이기에, 이 개념이라는 의미에서 벗어 날 수 없을 것이고, 그러므로, 법률가들에게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도무지 알 수 없어 법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느껴질 때 그들이 찾아갈 곳은 법전이 아닌 네 이웃으로, 그들에게 물어서 그들이 옳다고 여기는 쪽으로 판결하면 그것이 옳은 판결일 수 있다는 오래전 들은 법언의 참뜻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법률가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일 처리를 해야 하는 전문가 집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적 분쟁 해결의 최고의 기준은 누가 뭐래도 법률 조항이고, 판례와 법리임에는 많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명약관화한 진리이다. 그러나 법적 전문성에만 머무르지 말고 일반 시민들의 보통 생각, 평균적 정의감이라는 개념성도 잊지 말고 이들 양자를 조화롭게 구사하여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길이 바로 법이 사회와 소통하는 길이요, 법률가들이 일반 시민들과 함께하는 지름길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갈 때 땅에 떨어진 사법 신뢰성에도 겨우내 언 땅에 봄기운 스미듯이 새봄이 올 것이다. 개념 인간들이 넘쳐나는 개념 사회에서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전문성을 유지하는 한편 개념까지 겸비한 지혜로운 사법의 봄이 꽃 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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