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정 시인 |
일본은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식당을 아버지가, 아버지가 하는 일을 아들이 이어 가업을 지킨다. 이 점은 우리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일본은 장사가 잘되거나 소비자가 늘어난다고 해서 가게나 공급을 크게 늘리지 않다는 것이 특징이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아버지가 유명세를 만들어 놓으면 자식들이 공간을 넓히거나 공급을 늘리는 일을 한다. 이렇게 해서 잘 되면 좋은데 부모님이 만들어 놓은 비법이나 기술을 망가트리거나 사라지게 한다.
이런 현상은 일본 사람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업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에서 일어난다. 일본 사람들은 장사가 잘 되어도 돈을 더 벌기 위해 가업을 확장하지 않는다. 가업은 의식주를 해결하는 수단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인식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대대로 내려온 일은 의식주를 해결하는 방편이었다. 남은 시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즐기는 삶을 찾는데 투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장사가 잘되면 옆집을 사고 1층이면 2층을 올리고 공급을 확대하는데 시간을 쏟는다. 오로지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을 앞세우다 보니 저녁이 있는 삶이나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찾을 수 없다. 가업을 기업처럼 만들겠다는 생각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돈만 생각하는 확장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수십 년 노력의 대가가 한순간에 없어지면 부모님의 땀은 뒤로 하더라도 그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던 손님은 손맛을 다시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가업을 잇는 일본인들의 생활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가업은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무리하게 영역을 넓힐 필요가 없다. 준비한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고 퇴근을 한다. 남은 시간 자신을 위해 쓰거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데 투자를 한다. 적어도 이런 삶을 산다면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보다는 후회도 힘듦도 덜 밀려올 것은 자명해 보인다.
먹고 사는 부분만 해결되면 책도 읽고 연극도 보고 영화도 보고 공연도 보면서 삶을 영위하면 어떨까.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내가 지금 행복하지 않거나 힘이 든다면 그 돈은 병원비로 쓸 가능성이 크다. 힘들게 일해서 병원비에 쓰려고 돈을 모으고 있다면 그 돈이 내가 그렇게 열심히 땀 흘려서 번 의미는 당연한 말이지만 퇴색될 수밖에 없다.
부모님이 물려준 가업을 잘 지키려면 가업의 의미를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더불어 가업을 기업화하려는 마음도 접어야 한다. 이런 말을 하니까 정신 나간 생각 아니냐는 분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런 분들께 이런 말을 드리고 싶다. 그 일을 죽는 그날까지 해온 부모님의 삶이 어땠는지 꼭 돌아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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