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박만도와 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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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 박만도와 징용

장수익(한남대학교 문과대학 학장)

  • 승인 2018-11-15 14:29
  • 신문게재 2018-11-16 23면
  • 원영미 기자원영미 기자
장수익
장수익(한남대학교 문과대학 학장)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하근찬의 소설 '수난이대'는 징용에 끌려갔던 박만도라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소설에는 어디로 끌려갔는지 나와 있지 않지만 아마도 박만도는 남태평양 사이판의 티니안 섬으로 끌려갔던 것으로 보인다. 박만도는 그곳에서 굴을 파는 공사에 동원되었다가 한쪽 팔을 잃는다.

당시 티니안 섬에는 일본군이 남양군도 최대의 공항을 건설했다고 한다. 이후 일본과 미국의 가장 큰 전투가 사이판과 티니안에서 벌어졌는데, 이때 많은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도 희생되었다. 1975년 발견된 '조선인지묘'라는 비석 주위에 무려 5000여 구의 유골이 있었다고 하니 그 희생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일본에 원폭을 투여한 B-29가 이 공항에서 발진했던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일본이 국민동원을 시작한 것은 1938년 국가총동원령과 1939년 국민징용령 공포 이후였다. 일본인들이 국가 동원의 우선적 대상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탄광이나 군사시설 등 험악한 일자리에는 식민지 조선인들이 일본인을 대신하여 배치되었다. 조선 각 지역에서 할당된 동원 인원을 채우느라 강제 연행이 다반사였던 것도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4년에는 아예 모든 조선인을 마음대로 끌고 갈 수 있는 강제 징용이 실시되었다. '수난이대'를 다시 보면 백여 명이 한꺼번에 끌려간 것으로 보아 박만도는 이 무렵 징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강제 연행되거나 징용된 이들은 형식상 고용 서류에 서명해야 했는데, 이 고용계약이 후일 일본정부가 징용이 아니라 자발적 지원으로 강변하는 이유가 된다. 그러나 어떤 이도 낯선 곳에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험한 일을 하는, 게다가 형편없는 임금을 받는 계약을 자발적으로 하지 않을 것이다. 박만도 또한 강제노동에 대한 어떤 대가나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맨손으로 겨우 돌아온다.



지난 10월 말 대법원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배 소송 재상고심에서 피해자들에 각각 1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였다. 이 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는 이 판결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수상이 먼저 징용으로 부르지 말고 자발적 지원으로 불러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그럼에도 이 판결이 정당한 것은 강제 징용이 단순한 경제적 배상이 아니라 시효가 없는 보편적인 인권 문제이기 때문이며, 동시에 국가가 개인의 인권 침해를 대신하여 말소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 정부의 반응은 과거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에 대한 반성이 전혀 없이 배상으로 인한 자신들의 경제적 손해만 철면피하게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부끄러운 점이 있다. 그것은 지난 정부 시절 대법원에서 이 재판을 고의적으로 연기하면서 판결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정부의 일본 외교를 위해 징용이라는 인권 침해 사안을 고의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지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스스로 제대로 과거를 보아야 일본에도 그것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사건에 대한 조사가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장수익(한남대학교 문과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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