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나이테를 더해 갈수록 죽음이라는 것과 더 가까워 지는 것 같다. 혹자는 태어나고 죽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이치라고 주장하지만 편안하게 받아들이기에는 필자의 내공이 아직 한참 못 미친다.
며칠간 머리속에서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생애 처음 접했던 죽음은 외할머니였다. 당시 9살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평소와 다름없이 수업을 마치고 귀가했다. 집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평소에 보기 힘들던 외가쪽 친척들이 모두 보였다. 그리고 맛있는 냄새가 진동했다. 그저 즐거웠다. 친척들이 북적이는 것도 또 맛있는 음식이 많다는 것이. 죽음이라는 것이, 다시는 외할머니를 볼 수 없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그후 나이를 더해 갈수록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알게됐다. 모든 것과 이별하고 끝이라는 것을. 두려움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우연히 대화 주제로 죽음이 떠오르면 '누구나 다 겪는 건데 뭐가 무섭냐'고 허세를 부렸다. 해골바가지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원효대사의 고사를 접하곤 불경도, 성경도 찾아 읽어보곤 했다. 마음의 위안을 찾고자 노력했다. 점차 시일이 지나면서 죽음에 대해 공포에서 벗어났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만이었다. 단지 세월의 힘으로 잠시 잊고 있었던 것 뿐이었다.
발통기자 시절, 대전 법동 모아파트에서 변사체가 발견됐다는 신고에 출동하는 경찰을 쫓아 현장을 찾은 것은 아직도 악몽으로 남아있다. 책이나 영화로만 접했던 시체를 처음으로 본 경험은 충격이었다. 신고받은 집안에 들어서자 마자 코를 자극하는 시취에 저절로 발걸음이 멈췄졌다.문 너머 날아다니는 날파리 사이로 시신이 언뜻 보였다. 바로 몸을 돌려 뛰쳐나왔다.
한동안 이런 생각도 했다. 비록 무섭고 고통스럽겠지만 저승이나 지옥이 실제하면 좋겠다고. 즉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만으로 위안을 찾고자 했다.
옛날 사람들도 죽음에 대해 중요시했다. 오복 중 하나인 고종명<考終命>은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을 말한다. 현대의 웰 다잉<Well-Dying>과 일맥상통한다. 웰 다잉의 실천항목으로 법적 효력 있는 유언장 작성하기, 고독사 예방하기, 장례 계획 세우기 등이 거론된다. 노인복지관 등에서는 유서를 남기고, 자신의 묘비명을 지어보고, 삶을 정리하는 기록을 남기고, 죽음의 공간인 '관'에 실제 들어가 보는 식의 웰다잉 프로그램 시행중이다. 환하게 웃는 영정속의 선배를 바로보며 기원했다. 고종명이며 웰 다잉 이었길…. 명복<冥福>을 빕니다.
이건우 기자 kkan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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