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정 시인 |
70년대 80년대만 해도 서민들에게 끼니는 때우는 것이었지, 맛을 음미하며 먹는 일이 아니었다. 빨리 먹고 일어서지 않으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눈치를 받았다. 빨리 먹으면 먹을수록 일을 잘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20년 전 어느 식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날도 점심 끼니를 놓치고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밥 한 공기를 3분도 걸리지 않아 다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았을 것이다. 옆 테이블에 앉은 스님이 무엇이 그리 급해 밥을 빨리 먹느냐며 물었다. 늘 밥을 이렇게 먹어 와서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제가 그렇게 빨리 밥을 먹었느냐며 반문을 했다.
스님은 웃으면서 그렇다는 것이다. 이제와서 고백해 본다면 형제가 많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습관이다. 빨리 먹고 일을 해야 했고, 형제들보다 반찬 한 젓가락을 더 먹어야 배가 덜 고팠다.
스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 생명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은 생명이 자라 만들어진 것이니, 나를 위해 죽어 준 생명에 감사하며 천천히 먹으라는 이야기였다.
그랬다. 가난했던 시절은 음식이 생명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빨리 먹어 허기를 채워주는 산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날 이후 음식을 먹는 속도가 많이 느려졌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해 아직도 빠른 편이다.
요즘 텔레비전이나 동영상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가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다. 거의 모든 채널이 음식을 이야기하는 코너 하나 정도는 운영하고 있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의식주라는 말을 인정하더라도 도를 넘어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음식의 의미보다는 맛을 강조하고 그러다 보니 맛집을 소개하는 부작용을 넘어 ‘먹방’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배고픔의 시대를 넘어 3만 불 시대에 음식은 넘쳐난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돈을 주고 먹는 음식, 맛집을 찾아 먹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싶지는 않다. 음식이 생명이니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어 먹으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가난이 물려준 습관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사는 나를 돌아볼 때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고 먹는 모습, 보기에 좋다.
다 좋은데 눈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의식주를 너무 자주 주변에 보여준다는 것이다. 내가 먹는 모습을 보여주고 입는 것을 보여주고 사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정확하게 표현해 본다면 보여주는 과정에서 생기는 모습들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인간의 품위를 지키는 의식주라고 양보를 해도 먹방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인간의 품위를 지키지 못하고 있는 역설적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먹방시대가 부른 음식의 자화상에 대해 각자가 이제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내가 지금 먹는 음식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이 어디에서 생산되고 어디를 거쳐 여기 내가 앉아있는 밥상 앞에 있는가. 내가 땀 흘려 번 돈으로 사 먹는 음식이라도 이런 과정 정도는 생각한다면 음식을 먹는 모습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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