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익 학장 |
인문학자로서 잡스의 견해는 고맙지만, 고깝게 여기지기도 한다. 인문학을 좋게 본 견해를 속 좁게 못 받아들인다고 타박하겠지만, 그 견해는 인문학을 어디까지나 과학 기술의 결점을 메우는 보조적 역할로 한정한 것이어서 불편하기 때문이다.
어떻든 잡스의 견해가 주목된 이후 인문학 바람이 일었다. 인문학 교양서가 인기를 끌었고 많은 인문학 강좌가 주목받았다. 그저께 발표된 조사를 보면, 우리 사회에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비율이 70%에 이르고, 40%의 응답자가 인문 프로그램 참여 후 삶의 가치관에 대한 성찰과 변화를 겪었다고 답했다. 이를 보면 자주 운위되던 인문학의 위기가 해결된 듯하고 이제 인문학의 부흥이 일어날 것이라는 희망조차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실상은 어떤가.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달리 그 본산인 대학에서 인문학 학과가 폐지되는 경우가 다반사인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대학 규모가 축소될 때 일차적 폐과 대상은 인문학 학과였던 것이다. 예를 들어 철학과는 지방에서 매우 드문 학과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인문학 학과가 없어진 이유로 외적으로는 빈약한 취업률을, 내적으로는 인재 양성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인문학의 속성을 들 수 있다. 이 두 이유는 동전의 양면인데, 당장 쓸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라는 요구가 워낙 거센 현금의 상황에서 인재 양성에 시간이 필요한 인문학은 뒤처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오랜 시간을 들인 인재도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관점이 형성되어야 하며, 그에 따라 대학과 사회의 보호 장치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인문학이 심오하고 난해한 만큼 소수 엘리트 대학에서만 인문학 학과를 유지하고 나머지 대학에서는 없애도 된다는 발상도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엘리트 대학이 서울에 몰려 있는 경우, 지방의 역사나 문화를 특화하여 다루는 지방 인문학은 싹이 잘릴 것이며, 지방의 인문학 수요를 서울의 인재가 충족시키는 사태도 심화하고 말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교양 수준의 인문학만 관심을 받으면 심화한 인문학이 고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양 인문학처럼 인문학이 대중화되려면 심화한 인문학의 발전이 필요하다. 교양 인문학의 뿌리는 어디까지나 심화한 인문학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심화한 인문학의 유지 발전을 바탕으로 인문학을 대중화하는 사회적 프로세스가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 사회가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인류의 역사는 사회가 단선적으로 나아갈 때 쇠퇴하고 만다는 것을 알려준다. 필자가 보기에 지금 우리 사회만큼 당장 이익 추구를 향해 단선화됐던 적도 없는 것 같다. 인문학이야말로 이러한 흐름을 막는 보루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확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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