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새롬의 세상만사] 입술을 나선 말이 툭, 하고

  • 오피니언
  • 기자수첩

[박새롬의 세상만사] 입술을 나선 말이 툭, 하고

  • 승인 2018-08-06 10:22
  • 수정 2018-08-06 10:23
  • 신문게재 2018-08-07 21면
  • 박새롬 기자박새롬 기자
movie_image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2014년 개봉한 영화 <보이후드>는 여섯 살 소년 '메이슨'이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12년 동안 그와 그의 가족이 겪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았다. '한 아이의 성장에 가족과 미국의 역사가 모두 담긴 우주 같은 영화(씨네21 이화정 기자)'로, '영화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경이로운 체험(씨네21 송경원 기자)'을 선물해준다.

이 영화를 보는 건 두꺼운 앨범을 넘기는 기분과 비슷하다. 주인공의 어머니가 아이들을 키우며 학교를 다니고 일을 하는 모습, 아버지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들려주는 모습, 주인공이 친구를 사귀고 헤어지는 모습을 지켜본다. 특별한 일 없이 흘러갔다고 여겼던 장면들이 마지막엔 그 자체로 너무나 특별하게 다가온다. 스스로의 12년을 돌아보는 것처럼 추억에 젖어 가슴이 뜨거워졌다. 다보고 난 뒤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는 사람들의 말에 공감했다. '우리가 순간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순간이 우릴 붙잡는 것'이라는 영화 속 대사도 인상적이었다.

영화니까 시나리오가 있었을 것이다. 어느 장면도 진짜 우연이 아닌 연출일 뿐이다. 그럼에도 영화가 현실처럼 느껴지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우연을 연출한 장면들 때문이다. 실제 삶은 수많은 우연 때문에 방향을 바꾸지 않던가. 영화는 주인공도 아니고 조연이라고 하기에도 짧은 분량으로 출연하는 한 인물을 통해 아름다운 우연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어머니가 집수리를 하려고 부른 사람들은 이민자로 보이는, 영어가 서툰 이들이었다. 그 중 한 명이 최선을 다해 수리과정을 설명했다. 어머니는 그 수리공에게 "당신 똑똑하네요, 공부 더 해봐요"라고 말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몇 년이 흐르고 주인공 가족은 식사를 하기 위해 한 레스토랑을 찾는다. 주문을 하려던 때 식당의 매니저가 조심스레 어머니에게 다가온다. 자신이 예전에 집수리를 하러 왔던 사람이고, 그때 당신이 해줬던 똑똑하단 말을 듣고 나서 일을 하며 영어를 배우고 대학을 다녔으며 이 식당의 매니저로 일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글을 잘 쓰는구나, 그림을 잘 그리네. 주위에서 건넨 작은 한마디에 사람들은 꿈을 키우게 된다. 그 꿈의 크기에 자신이 못 미치는 것 같아 버거울 때 다시 힘을 내게 하는 것도 누군가의 한마디일 때가 많다. 어떤 말 한마디는 그렇게 툭, 가슴 속에 떨어져 꽃으로 피어나 손길을 건네고 등을 떠밀어준다.

시인 박준은 에세이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에서 '나는 타인에게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조금 따뜻하고 예쁘게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영화 속 장면은 이 글과 닮았다. 영화 속 어머니처럼 타인에게 무심히 건넨 나의 말들은, 어느 가슴에서 무엇으로 자라고 있을까. 부디 소중한 사람의 가슴에선 볕드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박새롬 기자 onoino@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취재]충남대학교 동문 언론인 간담회
  2. 대전성모병원, 개원의를 위한 심장내과 연수강좌 개최
  3. 대전 출신 오주영 대한세팍타크로협회장, 대한체육회장 선거 출사표
  4. 대전 정림동 아파트 뺑소니…결국 음주운전 혐의 빠져
  5. 전국 아파트값 하락세… 대전·세종 낙폭 확대
  1. 육군 제32보병사단 김지면 소장 취임…"통합방위 고도화"
  2. 대전 둔산동 금은방 털이범 체포…피해 귀금속 모두 회수 (종합)
  3.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트리 불빛처럼 사회 그늘진 곳 밝힐 것"
  4. '꿈돌이가 살아있다?'… '지역 최초' 대전시청사에 3D 전광판 상륙
  5. 대전 둔산동 금은방 털이범…2000만 원 귀금속 훔쳐 도주

헤드라인 뉴스


AIDT 제동 걸리나… 교과서 지위 박탈 법안 국회 교육위 통과

AIDT 제동 걸리나… 교과서 지위 박탈 법안 국회 교육위 통과

교육부가 추진 중인 인공지능디지털교과서(AI디지털교과서·이하 AIDT) 전면 시행이 위기에 직면했다. 교과서의 지위를 교육자료로 변경하는 법안이 국회 교육위원회를 통과하면서 정책 방향이 대폭 변경될 수 있는 처지에 놓였다. 국회 교육위원회는 28일 열린 13차 전체회의에서 AIDT 도입과 관련한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주요 내용은 교과서의 정의에 대한 부분으로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에 따라 현재 '교과서'인 AIDT를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것이 골자다. 해당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모든 학교가 의무..

"라면 먹고갈래?"… 대전시, 꿈돌이 캐틱터 입힌 라면 제작한다
"라면 먹고갈래?"… 대전시, 꿈돌이 캐틱터 입힌 라면 제작한다

대전시가 지역 마스코트인 꿈돌이 캐릭터를 활용한 관광 상품으로 '꿈돌이 라면' 제작을 추진한다. 28일 시에 따르면 이날 대전관광공사·(주)아이씨푸드와 '대전 꿈돌이 라면 상품화 및 공동브랜딩'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은 대전 꿈씨 캐릭터 굿즈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대전의 정체성을 담은 라면제품 상품화'를 위해 이장우 대전시장과 윤성국 대전관광공사 사장, 박균익 ㈜아이씨푸드 대표가 참석했다. 이에 대전 대표 캐릭터인 꿈씨 패밀리를 활용한 '대전 꿈돌이 라면' 상품화·공동 브랜딩, 판매, 홍보, 지역 상생 등 상호 유기..

충남도, 30년 숙원 태안 안면도 관광지 `성공 개발` 힘 모은다
충남도, 30년 숙원 태안 안면도 관광지 '성공 개발' 힘 모은다

충남도가 30년 묵은 숙제인 안면도 관광지 조성 사업 성공 추진을 위해 도의회, 태안군, 충남개발공사, 하나증권, 온더웨스트, 안면도 주민 등과 손을 맞잡았다. 김태흠 지사는 28일 도청 상황실에서 홍성현 도의회 의장, 가세로 태안군수, 김병근 충남개발공사 사장, 서정훈 온더웨스트 대표이사, 강성묵 하나증권 대표이사, 김금하 안면도관광개발추진협의회 위원장 등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 자리에는 하나증권 지주사인 하나금융그룹 함영주 회장도 참석, 안면도 관광지 개발 사업에 대한 지원 의지를 밝혔다. 이번 협약은 안면도 관광지 3·4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야구장에서 즐기는 스케이트…‘아듀! 이글스파크’ 야구장에서 즐기는 스케이트…‘아듀! 이글스파크’

  • 금연구역 흡연…내년부터 과태료 5만원 상향 금연구역 흡연…내년부터 과태료 5만원 상향

  •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