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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는 건 두꺼운 앨범을 넘기는 기분과 비슷하다. 주인공의 어머니가 아이들을 키우며 학교를 다니고 일을 하는 모습, 아버지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들려주는 모습, 주인공이 친구를 사귀고 헤어지는 모습을 지켜본다. 특별한 일 없이 흘러갔다고 여겼던 장면들이 마지막엔 그 자체로 너무나 특별하게 다가온다. 스스로의 12년을 돌아보는 것처럼 추억에 젖어 가슴이 뜨거워졌다. 다보고 난 뒤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는 사람들의 말에 공감했다. '우리가 순간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순간이 우릴 붙잡는 것'이라는 영화 속 대사도 인상적이었다.
영화니까 시나리오가 있었을 것이다. 어느 장면도 진짜 우연이 아닌 연출일 뿐이다. 그럼에도 영화가 현실처럼 느껴지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우연을 연출한 장면들 때문이다. 실제 삶은 수많은 우연 때문에 방향을 바꾸지 않던가. 영화는 주인공도 아니고 조연이라고 하기에도 짧은 분량으로 출연하는 한 인물을 통해 아름다운 우연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어머니가 집수리를 하려고 부른 사람들은 이민자로 보이는, 영어가 서툰 이들이었다. 그 중 한 명이 최선을 다해 수리과정을 설명했다. 어머니는 그 수리공에게 "당신 똑똑하네요, 공부 더 해봐요"라고 말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몇 년이 흐르고 주인공 가족은 식사를 하기 위해 한 레스토랑을 찾는다. 주문을 하려던 때 식당의 매니저가 조심스레 어머니에게 다가온다. 자신이 예전에 집수리를 하러 왔던 사람이고, 그때 당신이 해줬던 똑똑하단 말을 듣고 나서 일을 하며 영어를 배우고 대학을 다녔으며 이 식당의 매니저로 일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글을 잘 쓰는구나, 그림을 잘 그리네. 주위에서 건넨 작은 한마디에 사람들은 꿈을 키우게 된다. 그 꿈의 크기에 자신이 못 미치는 것 같아 버거울 때 다시 힘을 내게 하는 것도 누군가의 한마디일 때가 많다. 어떤 말 한마디는 그렇게 툭, 가슴 속에 떨어져 꽃으로 피어나 손길을 건네고 등을 떠밀어준다.
시인 박준은 에세이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에서 '나는 타인에게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조금 따뜻하고 예쁘게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영화 속 장면은 이 글과 닮았다. 영화 속 어머니처럼 타인에게 무심히 건넨 나의 말들은, 어느 가슴에서 무엇으로 자라고 있을까. 부디 소중한 사람의 가슴에선 볕드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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