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두 사람을 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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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 두 사람을 보내면서

장수익 한남대 문과대학장

  • 승인 2018-08-02 10:27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장수익 학장
장수익 한남대학교 문과대학 학장
6·25가 한창이던 때 미군의 공습 예보가 내린 원산 시내를 한 소년이 바삐 가고 있다. 혹독한 자아비판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학교에는 아무도 없다. 돌아오는 길에 닥친 공습으로 소년은 사람들과 같이 방공호로 들어간다. 폭탄이 떨어질 때마다 방공호는 무너질 듯 흔들리고, 옆의 여인이 떨면서 소년을 끌어안는다. 죽음의 공포와 여인의 냄새가 뒤섞인 혼돈…….

이 기막힌 장면은 최인훈의 ‘회색인’에서 주인공이 내내 풀지 못한 숙제이자, 작가 역시 일생을 두고 풀려 했던 화두였다. 우둔한 필자로서는 이 장면의 의미를 잘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장면이 공산주의라는 공적인 이데올로기와 여인의 냄새라는 사적인 욕망이 충돌하는 장면이라는 것, 그리고 그 충돌을 통해 죽음의 공포를 일깨우는 것이 전쟁임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설명이 타당하다면, 전쟁은 공적 이념을 앞세워 벌어지지만, 실상은 사적 욕망이 들끓고 있는 사태인 셈이다. 그러나 그 사적 욕망은 전쟁을 일으킬 권력을 지닌 이들의 욕망일 뿐, 그 전쟁에 희생될 이들의 욕망은 결코 아니다. 달리 말해 '우리'를 위해 싸우자고 하지만 실제로는 '너희'만 싸우라고 하는 권력이 전쟁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회색인’에서 주인공 독고준은 이러한 전쟁관을 확대해 당시 남한 사회 전반을 회의적 시각으로 관찰한다. 공산주의 북한만큼 남한도 전쟁의 위협과 공포를 내세워 사적 욕망을 채우는 권력이 지배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이후 최인훈은 ‘총독의 소리’에서 가상 역사를 내세워 당시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독재를 강화하는 권력을 비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 소설들이야말로 우리 현대사의 우여곡절을 만든 원인을 적절히 지목한 것이 아닐까. 속으로 사적 욕망의 충족을 꾀하면서도 겉으로는 안보나 평화를 내세우는 세력이 우리 사회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 현대사에서 정치가 전쟁의 공포를 이용하는 폐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경제적 부도 편중되는 현상이 벌어진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설혹 진정으로 공공의 정의를 위하려는 정치인이 나타난다 해도, 그도 마찬가지로 자기 이익을 챙겨왔다는 식의 역공격이 이루어지고, 여태껏 공공을 위하는 권력을 겪어보지 못한 국민은 그 역공격에 동의해서 한동안 보냈던 지지를 철회하게 되고 결국 '그놈이 그놈'이라는 식의 정치 불신이 뿌리박게 된다. 그 가장 대표적인 예는 고 노무현 대통령일 것이다.

지난주 우리 사회는 두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다. 한 사람은 위에서 말한 최인훈 선생이며, 다른 이는 다들 짐작하듯이 노회찬 의원이다. 이 중 최인훈 선생은 전쟁의 공포를 이용하는 권력보다 전쟁의 위협을 벗어나려는 민주적 권력이 자리 잡은 것을 보았기에 암의 고통에도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돌아가셨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노회찬 의원에 대해서는 공공의 정의보다 사적 이익을 챙겼다는 역공격을 못 견뎠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삼가 두 분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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