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이삿날의 추억

  • 오피니언
  • 세상보기

[세상만사]이삿날의 추억

  • 승인 2018-04-11 16:15
  • 신문게재 2018-04-12 21면
  • 이성희 기자이성희 기자
이른 아침부터 울리는 휴대전화의 벨소리에 비몽사몽인 상태로 전화를 받았다. "0000호에 이사를 하려고 하는데 차량 좀 이동주차 해주세요" 부탁인지 협박인지 모를 애매모호한 발언에 "네"라는 짧은 대답을 마치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아내도 그 소리에 잠이 깼는지 "누군데 왜?"라고 물어 보았다. 나는 "아랫집에 이사를 오는 모양인데 차를 빼달라고 하네"라고 답변하고 내려갔다. 아파트 1층에는 고가사다리차와 이삿짐을 실은 큰 트럭이 도착해 있었다. 차를 이동시킨 후 이삿짐 직원한테 물어봤다. "이사 들어오는 세대가 젊어요 아님 연세가 있으세요?" 직원은 "왜요?"라고 반문했다. "저희 아래층이라서 궁금해서요" 그제서야 직원은 경계를 풀고 대답해줬다. "아이들도 있는 중년층이던데요" 짧은 대화를 나누고 집으로 들어와 다시 잠을 청했지만 이삿짐 옮기는 소리에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을 쫓고 집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8년 전 이사하던 날이 떠올랐다.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한건 8년 전이다. 신혼집을 전세로 시작했는데 전세보증금을 턱없이 올려달라는 말에 무리를 해서 현재의 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 들어오기 전 샷시교체와 화장실 리모델링 등 인테리어를 진행했는데 소음이 많이 발생하는 공사였다. 공사를 진행하는 도중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전화도 많이 받았다. 입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치니 빨리 공사를 끝내 달라는 전화였다. 그렇게 인테리어를 마치고 이사를 하게 됐다. 포장이사라 우리가 특별히 할 일은 없었다. 이삿짐업체는 새벽부터 와서 일사분란하게 짐을 정리했다. 우리 부부는 이사하는 집으로 먼저 가 관리사무소에 신고를 하고 청소를 하며 짐을 기다렸다. 이삿짐이 도착하고 하나 둘 집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사가 완료되는 시점도 점심을 넘기지 않았다. 당구장과 이사하는 날 먹는 자장면이 제일 맛있는 법. 점심은 중국집에서 시켰다. 그렇게 이삿짐 관계자들을 보내고 우리는 마지막 정리를 한 후 아파트를 돌며 떡을 돌렸다. 새로 이사왔다는 신고식 겸 공사로 인한 피해에 대해 사과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인사를 다니는 우리에게 입주민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문을 열어주지도 않았고 떡이 싫다며 그냥 가라는 반응 등 열에 일곱 집 정도에서 퇴짜를 맞았다. 결국 많은 떡이 남았고 한동안 간식은 떡이 대신했다.

지금은 이사를 했다고 떡을 돌리거나 인사를 하는 세대는 없다. 8년 동안 한 번도 못 봤다. 이사가 끝나고 엘리베이터에서 모르는 얼굴과 마주치면 '새로 이사 온 사람이구나'하고 혼자 생각할 뿐이다. 그러고 보면 이사도 시대에 따라 많이 변했다. 이사 며칠 전부터 박스를 구해 짐을 꾸리던 모습을 지금은 볼 수 없다. 리어카와 1톤 트럭을 이용한 이사도 지금은 구경하기 어렵다. 그 자리를 포장이사가 대신하고 있다. 포장부터 정리까지 반나절이면 다 이뤄진다. 지인과 친척 등에게 부탁을 안 해도 된다. 사는 곳을 옮기는 이사는 누구에게나 특별하고 잊혀 지지 않는 날이다. 특히나 내 집을 장만해 이사를 하는 날은 더욱 더 그렇다. 그런 소중한 이삿날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추억으로 기억되길 바래본다.

이성희 기자 token77@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3.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4.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5.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1. 더젠병원, 한빛고 야구부에 100만 원 장학금 전달
  2. 한화이글스, 라이언 와이스 재계약 체결
  3.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4. [현장취재]한남대 재경동문회 송년의밤
  5. 대전시주민자치회와 제천시 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 자매결연 업무협약식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