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근대골목은 일찌감치 도시재생 사업이 추진되어 도시재생의 순례지처럼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 곳이다. 최근에는 북성로 공구거리까지 권역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몇 년 사이 대구의 근대골목은 불편한 동거인들이 많아진 소란한 골목이 되어버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조형물과 표지판, 그리고 반듯한 보도블록들, 억지스러운 스토리텔링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도시재생의 빛과 그림자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비바람 속에 눈물을 뚝뚝 떨구고 있던 노오란 산수유마저 없었다면 어찌 하였을까?
반면에 창원 창동예술촌은 여전히 마을활동가 창동아지매의 활기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꽃그림이 그려진 낡은 털신이 요술신이라도 되는 양 창동아지매의 걸음걸음마다 스토리텔링 잔치였다. 창동아지매가 지난해부터 키우고 있는 희망나무도 인상적이었다. 마산 3·15의거를 상징하는 나무는 지역 역사를 기억하고 지역 주민과 희망을 나누기 위해 담벼락에 그려진 나무이다. 시민이 원하는 글귀를 나무판에 그리고 새겨서 315개 주렁주렁 매달아 두었다.
사실 그런 나무야 별스러울 것이 없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숫자를 활용한 스토리텔링이었다. 창원이 지속적으로 315희망나무를 키워가듯, 광주가 518버스와 1187(무등산 높이)버스를 운영하듯 우리 대전이 놓쳐버린 숫자는 없는지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대전도 93엑스포를 상징하는 한빛탑의 높이를 93m로 책정한 사례가 있지만, 알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최초의 세계엑스포, 93대전엑스포를 기념하는 1993번 버스를 타고 갑천 변을 달리는 상상을 해본다. 시민이 함께 공유하는 숫자도 도시브랜드가 될 수 있음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두 도시를 걸으며 도시재생의 빛과 그림자를 만나고, 열정 가득한 사람을 만나고, 스토리텔링과 그것을 도시 브랜드화 하는 이미지텔링도 만났다. 분명한 것은 도시재생이란 참으로 오랜 시간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도시의 역사와 시민의 오래된 삶을 담아내는 일이니 피할 수 없는 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 속에 존재하게 되었다.
정부에서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도시재생뉴딜사업을 통해 지역특성을 고려한 마을공동체 육성 및 주민 역량강화사업을 추진한다. 대전도 신탄진, 가오동, 중촌동, 어은동 등 4곳이 선정되어 지난달 선도지역 선정을 위한 주민 공청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마을 공동체와 불협화음이 불거져 시작부터 우려를 낳고 있다. 행정의 일방적인 방식이나 하드웨어 위주의 도시재생사업은 지속성을 가질 수 없음을 여러 도시사례에서 보게 된다. 열정 가득한 사람을 키우고, 마을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함께 소통하는 도시재생의 느린 길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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