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가 날 수 있는 곳까지가 언어의 경계다. 그런데 통설이 어떨 때는 잘 맞지 않는다.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알베르토 몬디는 이탈리아의 자기 고향(미라노)에는 공식 언어가 26개라며 베니스에 가도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했다. 그 나라에는 6000개 넘은 방언이 존재한다. 대전과 세종과 청주처럼 인접한 지역도 발음과 억양이 달라 이중언어와 같다.
한국을 찾은 인도 친구들은 유창한 영어를 썼다. 힌디어, 따밀어, 방글리어, 말라알람어, 깐나다어 등 각 주 공용어마다 많게는 97개의 방언이 있으니 영어가 편할 것 같다. 스위스에서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만슈어를 공용어다. 우리의 KTX 같은 철도에는 SBB, CFF, FFS 3가지 이름이 나란히 붙어 있다. 끝내주는 연방제와 분권화에도 불편할 것 같다. 벨기에 방송국에서는 한쪽 방에서 프랑스로, 옆방에서는 플라망어로 뉴스를 진행한다. 북부 지방은 네덜란드어에서 갈라진 플라망어, 남부는 프랑스어, 동부는 독일어권 등으로 구분된다. 영어도 쓴다.
남북 분단국가인 우리지만 언어적인 면에서는 편하다. 이질성 아닌 동질성을 찾으려고 한다면 의사소통에 큰 불편은 없다. 백제 서동이 신라 선화공주를 데려올 때 신라 꼬맹이들에게 서동요를 가르쳤다는 근거나 계백장군과 화랑 관창의 대화, 연개소문과 김춘추의 담판에서 보듯이 통역을 두고 의사소통하지는 않았다. 고구려와 신라, 백제, 가야의 언어는 한 뿌리였다.
이번 대북 특사단으로 평양에 다녀온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도 통역 없이 대화하며 뭔가 뿌듯한 정체성을 확인했을 것이다. 평창동계올림픽 때 "오징어와 낙지는 남북한이 정반대더라"라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말에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그것부터 통일을 해야겠다"고 장단을 맞춰 화제가 됐었다. 그렇게 농담할 정도면 표준어와 문화어는 극복하지 못할 차이가 아니다. 정확히 북의 오징어와 남의 낙지가 일치하지는 않지만 동질성 회복의 열쇠가 언어 단일화라는 시사점을 주는 사례다.
우리가 단일언어사회라는 게 그나마 안도감이 든다. 메가톤급 안희정 성폭행 파문에 휩쓸려 조명은 덜 받았지만 특사단이 4월 말 판문점 제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남북 정상 간 핫라인 설치에 합의하고 돌아왔다.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사전 없이 읽은 모습이 새삼스러웠다. 이렇게 같은 언어 구조를 바탕으로 비슷한 생각을 하나씩 공유해 나가면 된다. 비핵화와 평화는 중요하지만 통역 없이 알아듣는 남과 북 사이에 진짜 말귀가 통하려면 필요한 것이 있다. 상호(북한은 '호상') 이해('리해')와 신뢰, 그리고 교감이라는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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