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사실과 의미

  • 오피니언
  • 세상보기

[세상보기]사실과 의미

  • 승인 2018-03-01 10:17
  • 원영미 기자원영미 기자
최태호
최태호 중부대 한국어학과 교수
세익스피어의 <햄릿>이라는 연극의 대사 중에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이라는 말이 있다. 대단히 유명하여 초등학생들도 알고 있는 대사다. 이 문장을 번역할 때 대부분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와 "사느냐 살지 않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의미의 차이가 있다. 또한 왜 굳이 'not to be'라고 했을까 의문을 갖는 사람도 드물다. 'to die'라고 쓸 수도 있고, 'to vanish(사라지다)'라고 쓸 수도 있는데, 하필이면 '살지 않느냐'라고 썼으며 우리는 왜 이것을 '죽느냐'라고 번역하는지 의문을 갖지 않는다. 사람들은 처음 누군가 말을 했다면 그것으로 진실인 양 인지하고 그대로 전하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소문은 처음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거나 덧붙여 이야기를 만들어서 전하게 된다.

특히 선거판에서는 남의 이야기는 나쁘게 전하고 자신의 잘못은 두루뭉수리 넘어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필자의 경우도 지난 선거 때 흘러나온 음해로 인해 아직도 고생하고 있다. 당시에 고발하려고 했지만 상대 후보가 사퇴하는 바람에 소문만 남고 말았다. 아직도 이상한 소문이 되어 필자를 괴롭히고 있다. 다행히 조사가 진행되니 "내가 언제 그랬느냐? 00한테 들었다, 누구한테만 말했는데…"라고 하면서 발뺌하기에 급급한 모양이다. 가관이다. 필자가 음해에 시달릴까 걱정이 돼서 그랬다고 하니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상황이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사실과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커피'라는 말을 했을 때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필자는 양촌리(?) 다방커피(커피믹스)를 생각하고, 젊은 친구들은 주로 아메리카노를 생각한다. 또 어느 친구는 '에스프레소'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같은 단어를 가지고도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자신의 기호나 주관에 따라 그 의미를 인식하고 있다. 대부분 습관에 준해 판단하고, 아니면 학교에서 배운 것을 중심으로 인식하고, 혹은 처음 들은 것을 그대로 알게 된다. 그러므로 처음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하느냐가 상당히 중요하다. 그것이 그대로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라고 했을 때 '커피콩(원두)'를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콩의 의미보다는 적당량의 커피콩 가루와, 적당량의 물과 적당량의 설탕이 섞인 음료를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이것의 요즘 인식되고 있는 커피의 의미다.

그래서 처음 말을 하는 사람의 인식이 중요하다. '분리수거'라는 말을 보자. '분리=서로 나누어 떨어짐, 또는 그렇게 함'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쓰레기를 배출할 때 하는 일은 분리가 아니라 '분류'가 맞다. 종류별로 나누는 것이다. 재활용품과 소각용 등으로 분류하는 것이지 하나하나 쪼개서 분리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수거 = 거두어 감'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배출하는 것이지 수거해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어느 공무원(?)이 그들의 입장에서 쓰레기 분리수거 하자고 하니 그 말에 솔깃해서 국민 모두가 '분류배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리수거'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온 국민이 잘못 사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단어다.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처음 들은 말을 진실 혹은 참이라고 생각해서 모든 이들이 이것을 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처음 전하는 사람이 참된 말을 해야 한다. 진실한 말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거짓 혹은 잘못된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근자에 세종시 교육청에서 중요 보직에 있던 사람이 술에 취해 밤길을 헤매다가 동사한 적이 있다. 세종시 교육청의 최고 책임자는 서둘러서 그것을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가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줄 착각하게 된다. 나중에 밝혀진 것을 보면 그들은 함께 술을 마셨고, 취한 사람에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발생한 사고였다. 그것은 분명 '동사(凍死:얼어 죽음)'지 심근경색사가 아니다.

어떻게 '凍死 = 심근경색사'로 의미가 변질될 수 있을까? '분류배출 = 분리수거'가 가능한가? 그래서 처음 말하는 사람은 진실을 올바로 알고 전해야 한다.

최태호 중부대 한국어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3.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4.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5.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1. 더젠병원, 한빛고 야구부에 100만 원 장학금 전달
  2. 한화이글스, 라이언 와이스 재계약 체결
  3.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4. [현장취재]한남대 재경동문회 송년의밤
  5. 대전시주민자치회와 제천시 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 자매결연 업무협약식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