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식 논설실장 |
비슷한 사태를 김해시청사 외벽에서도 봤다. 얼마 전까지 청사에는 '시의원님! 반말 그만하세요'라는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시의원이 공무원에게 혀 짧은 질문과 하대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김해시의장이 전국공무원노조 김해시지부장에게 사과하고 항의 현수막을 걷어내면서 지금은 일단락됐다.
하동 쪽도 심상찮다. 하동참여자치연대가 사천·남해·하동이 지역구인 여상규 의원의 "웃기고 앉아 있네"를 문제 삼아 국회의원직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여 의원 판사 시절 1심을 맡았던 간첩단 조작사건에 대한 답이었는데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시청한 국민이 도매금으로 반말을 들은 셈이 됐다. "문 대통령 보니까 '지' 앉아가지고 기자들 물으면, 답변이 실시간으로 프롬프터로 올라오더라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도 반말과 존댓말 경계를 넘나드는 반존말 정치인 명단에서 빼면 서운할 것 같다.
같은 반말도 그때그때 느낌이 다르다. 주인과 머슴 관계처럼 수직적인 위치를 환기시켜준다. 주체 높임법, 객체 높임법, 상대 높임법 등 경어가 발달된 만큼 반말 또한 전 세계 최고로 발달돼 있다. MBC 에브리원의 '어서 와, 한국인 처음이지'에서 데이비드라는 영국인이 아들 친구들과 맞먹어도 불손함이나 계층적 위계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감정 중시 언어가 아니다 보니 "너 몇 살이냐?"라며 말꼬리를 돌려 불리한 논점을 피하려는 '주의 전환의 오류'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나이나 지위의 수직 좌표와 친밀도의 수평 좌표가 불일치할 때 반발심이 돋는다. 아버지의 반말은 불쾌하지 않지만 초면인 연장자의 반말은 유쾌하지 않다. 김해시 공직자들이 분석한 것처럼 반말을 일여덟 번 이어가다가 맨 뒤에만 '~요'라고 붙이는 방식도 아주 흔하다. 차곡차곡 경어 써주며 갈구는 게 더 싫다는 사람도 있다.
심리적 거리를 멋대로 조절하며 말의 에너지를 절약하는 쪽은 힘 가진 쪽이다. '해라'보다 '하십시오'가 음절이 길다. 세쿠하라(세쿠샤루 하라스멘토·섹슈얼 허레스먼트)를 만든 일본은 파와하라(파와 하라스멘토·파워 허레스먼트)도 만들었다. 우린 '성희롱' 때처럼 '힘희롱'으로 빌려 쓰고 있다. 서지현 검사, 이재정 의원 등의 성추행 '미투(Me Too)' 고백에서 보듯이 차별, 언어폭력, 성희롱, 힘희롱은 계보가 같다. 갑이 을을 괴롭히는 힘희롱의 소도구도 반말과 막말이다. '반말로 주문하면 반말로 주문받고 반만 드립니다'라는 온라인 속 안내문이 인상적이다. 사실이라면 이러는 것도 용기다.
우월적 지위를 누리다가 구설에 오른 정치인 면면을 봐도 반말과 막말의 거리는 역시나 짧다. 그러고 보니 중도일보 사무실 벽에 붙은 '2018 중도일보 좋은 직장 만들기' 캠페인에 '서로 경어 씁시다'가 들어 있었다. 존대어가 사회의 조직 언어로 토착화되지 않아 실행이 쉽지 않지만 머리에 느낌표 하나는 쳐진다. 아무리 포장해도 반말은 반(半)토막 말이다. 반말이 온전하지 않은 반쪽 말인 것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고 스스로 믿는 이들도 어쩌지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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