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교육미디어부 금상진 기자 |
먼발치에서 조용하게 지켜보던 팬들이 결국 단체행동을 시작했다. 지난달 대전의 한 카페에서는 대전시티즌 팬 30여명이 모여 '대전시티즌 비상태책위원회(이하 비대위)라는 모임을 가졌다. 지난해 12월 결성된 온라인 모임이다.
'비상대책위원회'란 보통 중대한 일이 일어나거나 일어날 가능성 있을 때에 소집되는 회의 기관이다. 시즌도 시작하지 않은 지금을 '비상시국'으로까지 봐야 하는지 의문은 들지만 이들이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비대위는 지난해 11월에 취임한 김호 대표이사와 고종수 감독 영입 과정에 대해 강한 불신을 보내고 있었다. 과거 팀과 갈등을 빚으며 물러났던 인사를 대표이사와 감독으로 불러들인 과정과 이에 대한 해명이 없었다는 것이 이유다.
인사문제 외에도 비대위가 우려하고 있는 부분은 팀의 정체성이다. 서포터 소속이라 밝힌 한 회원은 "사장과 감독은 팀을 거쳐 가는 사람이지만 우리는 그들이 떠난 이후에도 팀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라며 "외부 인사로 인해 20년 넘게 지켜온 팀의 전통과 정체성이 무너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대표이사에 사무국장, 감독까지 외부인사로 채워진 사례는 대전 구단 역사상 처음이다. 과거 인사 문제로 수많은 내홍을 겪은 시티즌이지만 대전출신 사장과 사무국장이 꾸준히 임용되면서 지역구단으로써의 명분만은 지켜왔다.
시티즌의 홈경기가 있는 날, 경기장에는 대전시티즌의 주인은 '대전시민'이라는 구호가 울러펴진다. 그러나 시티즌 운영에 대한 문제가 지적될 때 마다. 주인들의 의견은 뒤로 빠져 있었다. 물론 대전시티즌은 독립된 회사이기에 행정의 전반적인 부분까지 시민들의 의견을 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간 지적됐던 문제에 대해 팬들과 시민들에게 납득할 만한 해명 역시 단 한 번도 없었다. 팬들과 간담회가 몇 번 열리긴 했지만 21년 동안 손에 꼽을 정도다.
비대위는 회의에서 언급된 의견을 취합해 금주 내 시티즌에 전달하고 면담을 요청할 예정이다. 시티즌 역시 비대위 결성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대화에 응할 용의도 있다"고 밝힌바 있다.
팬심(心)은 프로구단의 생명줄과도 같다. 한번 떠난 팬심을 돌려놓으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팬심마저 돌아선다면 대전시티즌은 그야말로 '비상시국'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대화의 자리가 마련된다면 김호 대표이사의 직접적인 입장 표명이 포함되기를 바란다. 시민이 주인인 구단, 20년 넘게 꼴찌 팀을 응원해온 팬들에게 대전시티즌은 꼭 답을 해줄 의무가 있다. / 금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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