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익 한남대 문과대학 학장 |
최근 자유한국당에서 일어난 볼썽사나운 내분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당협위원장의 자격 박탈을 당한 뒤 이제 제명까지 된 류여해 최고위원이 홍준표 당 대표와 벌인 설전 가운데 "공산당 같다"는 말을 한 것이다. 그 말이 정말 자유한국당이 공산당이라는 뜻은 아니겠지만, 공산당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반공주의 작가 선우휘의 소설 '테러리스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해방 이후 우익 행동대였던 서북청년단에서 '빨갱이들과의 싸움'을 치러낸 인물이다. 용산에서 제주까지 전국을 다니면서 빨갱이들과 싸웠던 그는 6·25가 끝나고 공산주의자가 없는 세상이 되자 생계가 곤란한 처지가 된다. 이런 사정은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때문에 이들은 정치깡패가 되어 각각 자신을 고용한 선거 후보를 위해 죽음을 무릅쓴 격투를 벌이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들이 싸울 때 서로를 어떻게 호칭하는가이다.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서로를 '빨갱이'라 부른다. 상대방이 결코 공산주의자가 아닌 것을 뻔히 알지만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이 장면은 빨갱이라는 용어가 우리가 알듯이 공산주의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방해하는 이를 처치하기 위한 용도였음을 잘 알려준다. 반공주의에 의거한 사회의 질서가 압도적이었던 그때, 방해가 되는 이들을 없애는 데는 공산주의자로 규정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 현대사를 보면 6·25 이후에도 오랜 동안 상대방을 빨갱이로 공격하는 이른바 색깔론이라는 관행이 지속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고 김대중 대통령을 들 수 있는데, 심지어 그가 대통령이었던 때에도 그를 공산주의자인 것처럼 모략하는 정치적 전술이 종종 등장하곤 했다. 국민이 뽑았고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라 해도 공산주의자로 몰아 부치는 대상에는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어떤 공산주의적 제도도 마련하지 않았고 당연히 우리나라도 공산화의 위험에 전혀 처하지 않았다. IMF로 온 나라가 혼란스럽던 그때에도 말이다.
요즘에 와서는 명확하게 상대방을 공산주의자로 규정하는 관행은 표면적으로는 거의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알기로는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위원장이 2013년에 당시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를 공산주의자라고 지목했던 것이 마지막 사례인 것 같다. 이러한 발언에 대해 명예훼손이라는 판결이 내려진 것은 그러한 막무가내식 규정이 낳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명확하게 상대방을 몰아 부치는 관행 대신 자리 잡은 것은 은근슬쩍 공산주의자일지 모른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공격이다. 대통령 선거 중에 고 노무현 대통령을 향했던 NLL과 관련된 시비가 그 단적인 예이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이 북한에 해당 수역을 바치려 했다는 식의 시비였는데, 이는 당사자가 돌아간 이후 치러졌던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반복해서 제기된 사안이었다. 이러한 시비에는 북한에 협력하는 세력에게 정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식의 이른바 정치적 마타도어가 깔려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사실 반공 이데올로기가 정말 반공을 지향한다면 분명한 하나의 정치적 입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반대편을 억누르기 위한 구실이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특히 민주화에 앞장섰던 이들을 친공산주의로 규정하여 공격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를 이루어 가는 데에는 크나큰 방해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타인의 사상을 공격하여 이득을 보는 것만큼 자유민주주의에 반대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다시 최근의 자유한국당 사태로 돌아가 보면, 빈번히 정치적 반대편에게 색깔론을 제기해 왔던 그 당의 역사를 볼 때 일종의 업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테러리스트’의 인물들처럼 색깔론으로 상대를 공격하던 관행이 몸에 배어서 이제는 자신들끼리도 그렇게 공격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관행이 더는 우리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아야 보다 나은 민주적 정치가 구현될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장수익 한남대 문과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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