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아 대전문화재단 대표 |
직업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가끔 글 청탁을 받거나, 여행기를 쓰고 있을 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회의하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공연을 본다. 그 또한 살아서 하는 행위 들이고 내가 좋아서 하는 것들임에도 유독 글을 쓰고 있을 때 어느 순간보다도 살아있다는 느낌은 들게 되는 것은 왜일까. 스쳐 지나갔던 느낌이나 생각들이 글쓰기를 통해 비로소 내 속에서 정리되면서 맑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르는 방황 속에서 찾아다녔던 것들 또한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모임에 들어가고 공부하고 토론하고, 책을 읽고 음악도 들었던 같다. 이것저것 하는 형태는 다르겠지만, 사람들은 각자 살아있다는 느낌을 유지하려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평범하지만 당연한 결론을 내려 본다.
늦은 휴가 아니 참여하고 싶은 답사일정에 맞추기 위해 여름 휴가를 늦게 냈다. 작년 6월에도 이번과 거의 같은 코스의 북한과 중국 접경지대 압록강에서 두만강을 따라가는 답사를 다녀왔고 올해 다시 다녀왔다. 나는 왜 또 가게 된 것일까. 우연으로 시작됐던 것들이 필연으로 겹쳐질 때가 종종 있다. 이 답사의 경우가 그러한 것 같다. 작년 우연한 기회에 가게 된 답사에서 '이 느낌이 무엇이지'라는 강한 끌림이 있었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국경선인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 이쪽과 저쪽으로 구분 지어 생각해 왔던 것은 학습된 것이었고, 현재의 중국을 통해 따라가면서 보고 듣고 먹고 하는 짧은 시간 속에서 나를 비롯한 한국 사람의 유전인자에는 인위적인 국경선 그 이상의 것이 있다는 강한 느낌이 있었다. 그 느낌을 다시 확인해보고 싶었다.
내 삶의 변곡점을 가져왔던 단어가 '문화적 감수성'이다. 그 단어는 내 삶의 존재 이유를 되묻고 있었다. 그 이전까지 누구도 네 느낌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고 알려준 정보를 외우고 답함으로써 기능적인 전수자로서 세뇌했다고 한다면 '문화적 감수성'이라는 단어를 통해 내 감수성은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을 스스로 되묻게 되면서 점점 문화영역에 머물게 되었고 직업화되었다.
살아있는 느낌을 나름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대전문화재단이 지원하는 차세대아티스타들의 공연을 보았다. 무용을 전공한 차세대아티스타의 발표무대, 당연히 내가 생각하는 무용공연일 거로 생각하고 보았다. 그런데 연극을 하는 연출가, 시각 미술을 한 작가, 무용수들이 어우러진 요즘 표현의 장르 불문의 융합이었고 내가 찾던 그 무엇이기도 했다. 공연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내가 물었다. 서로 다른 장르의 세 명의 예술가들이 만나 제각각의 작품을 만들면서 공통의 주제를 가지려 하지는 않았었는지. 그랬는데 돌아온 답변은 공통의 주제를 가지려 하지 않았고 그럴 의도도 없었고 우리는 그냥 서로 따로 또 같이하고 싶은 것을 해보고 싶었다고.
2013년부터 배출된 대전문화재단의 차세대아티스타들이 이제 60여 명에 이른다. 이들 선후배가 모여 장르를 뛰어넘는 실험들을 작년부터 시작했다. 올해도 이들 아티스타들의 콜라보레이션의 결과물로서 창작품들이 공연되고 전시되었다. 드럼과 춤이 만나고, 퍼포먼스와 시 그리고 연극들이 새로운 스타일로 연출되고 국악과 대중음악이 만났다. 그 만남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역동성은 살아있다는 느낌 그 자체였다. 그것을 굳이 예술창작품이라 표현하지 않아도 관객은 예술가들의 생생한 감성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벅찬 뿌듯함을 가졌고 다시 공연장을 찾게 될 것이었다.
이춘아 대전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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