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익 한남대 문과대학 학장 |
공감 곧 같이 느낀다는 것만큼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품성도 없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인간(人間)'이란 말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사람 인'이란 글자부터 두 사람이 서로 기대고 있는 모양인 데다가 '사이 간'까지 써서 인간은 혼자서는 사람답게 될 수가 없고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같이 있다'는 것은 물리적인 거리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가 가깝다는 뜻이다. 공감은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상대편의 입장이나 처지에 설 때 생긴다.
최근에, 세월호가 침몰할 당시 대통령에 대한 최초 보고가 알려진 것보다 30분이 빨랐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30분이 생사를 가르는 긴박한 시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 시간을 아무 조치 없이 보낸 것이 몹시도 아프게 다가온다. 가장 아쉬운 것은 권력의 공감 능력이 부재했다는 점이다. 구조되리라는 기대가 어그러지면서 희생자들이 느꼈을 절박한 심정을 권력의 당사자들이 같이 느꼈다면, 많은 아이가 희생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시 권력에 공감 능력이 부재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답으로는 먼저 권력의 일반적인 속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권력이란 누군가를 움직이는 힘인데, 이는 움직임을 당하는 이들이 싫어도 움직이게 해야 권력이 됨을 뜻한다. 반면에 공감은 움직임을 당하는 이들의 입장을 같이 느끼는 마음이기에 그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권력과 상반된다. 그렇다면 당시 권력에 공감 능력이 없었던 것은 권력의 일반적인 속성이 낳은 당연한 결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의 설명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권력이 신이나 천명(天命) 같은 초월적 존재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전제되고 신분제도로 권력이 위계화되어 있는 봉건국가의 경우라면, 위의 설명이 맞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의 국가는 봉건국가가 아닌 현대국가이다. 현대국가는 봉건국가와 달리 권력의 원천이 초월적 존재가 아닌 국민 그 자체이며 신분제도처럼 권력을 위계화하는 질서도 최소한 공식적으로는 없다. 그것이 민주주의라면, 이 민주주의에서는 국민이 주인이므로 권력은 국민에게 봉사해야 하고 따라서 권력은 국민에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요컨대 민주주의의 권력은 공감하는 권력이어야 하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당시 권력에 공감 능력이 부재했던 것은 권력의 속성 때문이 아니라 권력의 원천이 국민이란 사실을 무시했기 때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설명으로 당시 권력의 공감 능력이 부재했던 원인이 두루 밝혀진 것은 아니다. 또 고려해야 할 것은 권력이 수많은 다양한 국민 중 과연 누구와 공감할 것인가이다. 민주주의 권력은 원칙적으로 모든 국민에게 공감해야 할 것이나, 현실적으로 반드시 우선적으로 공감해야 할 국민으로는 세 유형을 들 수 있다.
먼저 법령이나 정책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이들이다. 이들과의 공감은 피해에 대한 보상이 잘 수행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두 번째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의해 간접적인 피해를 입어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다. 이들과의 공감은 국가를 이익사회가 아닌 공동사회로 나아가게 하는 출발점이 된다. 마지막으로는 재해나 사고를 당해 생명 자체의 보존이 위태로운 이들이다. 이들과의 공감은 가장 시급하고도 효과적인 조치를 이끌어내어 보다 안전한 국가를 만드는 디딤돌이 된다. 세월호가 바로 그러한 경우이다.
이로 볼 때 세월호 당시의 권력은 반드시 공감해야 할 상황에 빠진 국민을 외면하고 아예 고려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당시 권력은 누구와 공감했을까. 이들이 권력을 사유화했던 지난 정권의 상황을 보면, 자신들끼리만 공감했거나 추구하는 이데올로기나 개인적 이익이 일치하는 이들끼리만 공감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
세월호가 남긴 교훈 또는 지난 권력이 역설적으로 남긴 교훈은 이것이다. 국민과의 공감이 민주주의 국가의 권력이 지켜야 할 최고 덕목이라는 것, 이를 위해 모든 권력은 자신들에게서가 아니라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장수익 한남대 문과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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