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양강국의 의지가 담긴 '거꾸로 세계지도' [해양수산부 제공] |
문재인 대통령이 “거꾸로 보니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가 정말 좋다”고 극찬했다는 지도를 펼쳐든다. 해양수산부 '거꾸로 세계지도'에는 한반도가 유럽, 중국, 러시아 등 유라시아 대륙 꼬리의 혹처럼 안 보이니 우선 속이 후련하다. 콧구멍만한 나라에서 남북으로 쪼개져 안달복달한다는 느낌은 조금 줄어든다. 지도가 뒤집혔다는 생각을 버리면 어지럽지도 않다.
이런 지도가 반가운 이유는 3년 전 내 칼럼으로 소개한 적이 있어서다. 김영춘 해수부 장관의 의지를 설명하지 않아도 '글로벌 해양강국' 타이틀에 비전이 응축돼 있다. 세계관을 억지로 욱여넣은 건 아니다. 지도 한가운데에 예루살렘이 있고 천국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그려진 중세 잉글랜드 원형 세계지도처럼 고색창연하지 않으며 성리학 영향으로 4각 형태가 된 한양전도처럼 이념이 과잉되지도 않는다.
▲ 최충식 논설실장 |
그저 대륙이 막히니 바닷길로 가자는 발상이다. 단순하고 혁신적이다. 유럽이 세계지도의 중심이라는 의식을 지워버리기엔 한계가 있지만 큰 그림으로 보면 국토가 왜소하다는 생각은 어느 결에 사라진다. 항해사들이 각도를 정확히 잡을 용도로 경도와 위도만 부각시키고 육지는 대충 그린 해도와도 다르다. 직선으로 뻗거나 45도로 만나는 지하철(도시철도) 노선도를 보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아무튼 거꾸로 지도는 거꾸로 뒤집히고도 객관성을 잃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인처럼 일부만 알고 있지도 않다. 인도, 북부 아프리카, 도나우강 이북 정도가 있는 그들 지도에 아메리카와 중국이 없는데 '한국'이 왜 있겠는가. 해상왕 장보고의 활약이나 청동기 시대의 서남해역 문물 교류는 잠시만 잊어줘야 한다. 바다는 어떤 의미로 우리 기억에서 깜깜한 영역이었다. 유럽인의 지도에 등장하고도 한동안 왜곡은 계속된다. 린스호턴의 '동방 안내기'(1596년)에는 일본보다 위쪽의 중국 근접한 곳에 코레 섬(Insula de Core)으로 적혀 있다. 우리가 섬나라란다.
그러다가 우리나라 지도가 '독립'된 것은 프랑스의 지리학자 당빌이 제작한 조선왕국전도(1737)를 통해서였다. 주자관(朱子冠)을 쓰고 인삼을 든 서양인(?) 선비가 등장하는 이 지도는 19세기 중반까지 조선 지도의 모델이었다. 그 후, 삼각점을 이용한 일제강점기 지도는 토지 수탈이 목적이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우리 인식과 관점이 반영된 지도는 없었다.
이제 그렇다면 유라시아 대륙을 디딤돌로 태평양, 인도양으로 가보자. 전설 속 설문대할망보다 수백 배 큰 발을 뻗는 상상은 즐겁다. 세계가 우리 땅을 위해 존재한다는 착각은 더 즐겁다. 필리핀과 말레이반도, 인도네시아까지 대한민국을 호위한다. 지구는 육지의 4.5배가 바다인 수구(水球)다. 발상을 전환하면 금방 실감이 난다. 그리스와 이탈리아가 유럽의 다리가 되듯이 글로벌하게 해양전략적으로 쓸 수 있으면 좋을 지도다.
지도든 정책이든 물론 진짜 같기만 하면 가짜다. 해양강국이라면서 해양주권을 못 지키거나 청와대 해양수산비서관 자리나 없애면 이 또한 모순이다. 닮기만 한다면 이미 다르다. 옛날 혼일강리역대국지도가 왕권의 상징이었듯 '거꾸로 세계지도'를 정권의 장식물처럼 전용해서도 안 된다. 17일로 출범 100일을 맞은 문재인 정부에서 반짝했다가 5년 후 사라지는 비운의 지도가 되지 않아야 한다. 국회, 중앙부처와 지자체 등에 내걸릴 이 지도가 “지도 갖고 장난쳤다”라는 말을 듣지 않길 진실로 바란다.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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