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출범 5주년, 행복도시 착공 10주년이 됐다. 기념식도 치렀다. 사실상 천도인 '신행정수도'가 제안된 지는 15주년이다. 계획도시 세종시로서는 그렇다. 역사로는 연기현이나 금지현(전의)까지만 올라가도 1260년이다. 앞선 삼국시대의 두엉지현(연기지역)과 구지현(전의), 더 앞선 금강유역의 진국까지도 소급된다. 언젠가는 뿌리 깊은 근본이 부각돼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 복원된 서울 광통교를 지난 적이 있다. 위치가 약간 달라졌지만 야심찬 청계천 준설공사를 끝내고 왕세손(정조)을 데리고 광통교에 나가 흐뭇했을 영조를 기억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오물천지가 된 청계천은 요샛말로 인구의 수도권 집중에 따른 적폐였다. 인구 기록이 고무줄 같지만 그때 서울 인구를 25만명 정도로 필자는 어림잡고 있다.
▲ 최충식 논설실장 |
이 모두 원래의 신행정수도 설계도를 따르지 않은 데도 원인이 있다. 그러면서 습관처럼 비효율을 정부부처의 세종시 이전에서만 찾으려 한다. 발상을 뒤집어보면 서울에 정부부처를 남겨 발생시킨 비효율이다. 이론상 이 병통은 축소된 행정도시의 확장, 쉽게 말해 나머지 중앙행정부처를 옮기면 풀린다.
헌법적 족쇄도 풀 때 풀더라도 방법론이 또한 문제다. 수도(서울)와 행정수도(세종시) 양립 방안이 자주 거론된다. 헌법재판소 판결은 “수도는 입법기능을 수행하는 곳”이고 “대통령이 활동하는 장소”로도 정의한다. 세종시=행정수도로 못박으면 국회분원의 법적 근거는 얻겠지만 국정감사 계절에 잠깐씩 들르는 간이역 구실이나 한다면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행정기능보다 복합기능에 인구 증가의 성패가 더 달려 있다.
그런데 지금은 미미한 수준이다. 수도권 인구가 통계 작성 후 처음 빠져나갔는데 세종시 영향이 있기나 할까? 1988년 이후 28년 만에 서울 인구가 1000만명 밑으로 떨어졌지만 대세를 뒤집는 변화는 아니다. 그보다 비정상적인 수도권 인구 집중은 늦어도 1973년 30% 도달 이전에 손봤어야 했다. 박정희 정권은 서울로의 이사를 막을 생각까지 했지만 경제성장론에 떠밀려 그냥 생각에 그쳤다. 1987년에는 40%, 2008년 48%를 넘겼다. 서울시 인구는 1960년 244만명에서 1970년 533만명, 1980년 836만명 등으로 비대해졌다.
이렇게 분석하다가 떠오르는 사진이 있다. 서울도성의 성곽 아래 초가집이 있는 옛 사진이다. 그 엄청난 집중 욕구가 국민 둘에 한 명꼴인 수도권 인구 집중도 49.4%의 원동력일지 모른다. 걸핏하면 들먹이는 프랑스는 18%, 영국은 19%, 집중률이 심각하다는 일본은 28% 정도다. 우리의 해법은 세종시 5년을 통해 상당 부분 간추려졌다. 청와대와 국회, 대법원과 대검찰청이 옮기면 달랑 공무원만 오지는 않는다. 수도권 인구 집중도를 떨어뜨릴 전환점이 서서히 찾아오는 것이다.
세종시가 대전, 청주 등 충청권 인구를 빨아들이는 부작용 역시 인구문제로 풀 수 있다. 그 결정적인 요인은 세종시=수도로 규정하는 개헌이다. 1969년 수도권 집중 억제 방안, 1982년 수도권 정비계획법, 1994년 수도권 공장총량제 등은 억제 효과가 부실했다. 이 시점에서 1960년 수도권 집중도가 16%였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좋겠다. 미래 행복도시, 행정수도의 방향성을 진취적인 인구정책에서도 찾아보자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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