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춘아 대전문화재단 대표 |
‘구석으로부터’는 지난 3월 문을 연 대전시 중구 정동에 위치한 문화공간의 이름이다. 1966년 만들어졌던 교회가 문을 닫고 오랫동안 인쇄소 창고로 사용됐다가 눈 밝은 한 문화기획자의 간절함과 주변의 도움으로 리모델링돼 문화공간으로 재탄생됐다. 무엇이 됐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 라는 부제를 달아 왜 ‘구석으로부터’인지를 더 이상 묻지 않게 해주었다. 개관한 지 몇 달되지 않았지만, 꾸준히 전시와 공연, 회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공연장, 전시장, 회의장 제각각 분리돼야 한다는 기존의 관념을 깨고 하나의 공간에서 공연이나 전시 그 무엇이 됐든 작품의 의미를 관객들이 재발견하는 기쁨을 준다.
7월 1일 토요일 오전 전국 각지에서 온 문화활동가들에게 대전의 원도심을 보여주는 시간이 있었다. ‘새 정부와 지역문화정책’이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토론회를 한 다음 날이었다. 일정은 대전역을 중심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도보여행. 대림관광호텔에서 숙박하고 걸어서 정동으로 이동해 ‘원도심레츠’에서 브런치 스타일의 아침식사를 하고 ‘구석으로부터’에서 문화공간 리모델링 과정을 들었다. 쏟아지는 비를 핑계로 그곳에서 시간을 끌며 즉석에서 노래도 들었고, 아코디언 연주도 들었다.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반주로 곁들여졌다. 다음 일정은 대전역 동광장 옛 철도관사촌 지역에서 작업하고 있는 ‘소제창작촌’이었다. 2012년부터 대전의 근대건축을 조사연구하여 관사촌 빈집에서 전시했던 것을 계기로 이제는 작가들의 레지던시 공간이 된 곳을 돌아보았다. 골목길에 대한 향수와 함께 이제는 결코 편치 않을 낡은 주택 구조에도 불구하고 문학과 미술하는 청년들이 머물면서 작품을 하는 작업공간은 마음 짠하게 하는 무엇이 있었다.
그 공간들을 돌아보며 뭔가 느낌을 받은 사람들은 떠날 줄을 모르고 즐거워했고 그 동네에서 30년 넘게 수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장을 초빙해 혼자서 익혔다는 멋들어진 기타연주도 들었다. 일정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대전 칼국수를 먹고 가야 한다고 누군가가 우겨서 칼국수집으로 몰려갔다. 다음날 페이스북 등에는 정작 토론회보다는 원도심여행이 더 재미있었다는 후일담이 올라왔다.
자칫 그렇고 그런 지역답사가 되어버릴 수도 있었을 일정이 전국 각지에서 온 문화활동가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불러일으켰다면 이는 분석해볼 여지가 있다. 나의 결론, 감동은 사람들에 있었다는 것이다. 전날 과음으로 은근히 해장국을 기대했던 참가자들은 난데없는 브런치 메뉴에 실망했으나, 지역화폐운동을 비롯해 건강한 먹거리 운동을 하는 원도심레츠 회원들이 정성껏 준비한 재료와 요리비법을 들으면서 맛있게 그릇을 비웠다. 오랫동안 창고로 사용되었던 교회공간을 문화공간으로 변신시킨 흔적을 마치 예술작품인 듯 보았고, 무엇이 됐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문화공간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획자에 대한 믿음이 감동을 낳았으며 저절로 노래와 연주가 터지게 했다. 소제창작촌에서도 그러했다. 빈집을 창작공간으로 만들어갔던 6년간의 내공을 참가자들은 보았고 청년작가들의 진정성을 느꼈다. 사람들은 무엇에 감동하는가, 다시 생각하는 계기였다. 소제창작촌 참여작가인 문학청년은 이전 거주자가 버리고 간 낡은 거울에 이렇게 시를 썼다.
소제동
오래된 집에는/ 오래 산 나무가 있다/ 오래된 사람에게는/ 오래 산 마을이 있고/ 오래될수록/ 나는 더러움에 가까워져 온 것 같다/ 가지치기를 제때 받지 못했다고/ 변명이 앙상히 자라나고/ 오래된 사람과/ 오래 살지 않은 마음이/ 늙은 벤치에 앉아 갓 태어난 잎을/ 함께 바라보는 일은 가능할까, 그것은/ 괜찮아질 수 있는 일일까/ 오래된 마을에/ 오래 살지 않은 나무가 찾아온지/ 오래지 않았다/ 낯선 발자국들 위로/ 노란 핏방울 피어난 지/ 오래지 않았다/ 죽은 벽 등마다/ 봄 춤사위 절뚝인다/ 무서운 범람이 시작되었다
이춘아 대전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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